싸우다가 한 사람이 폭행 혐의로 고소당해 수사를 받는다. 자기는 때린 적이 없는데 상대방이 거짓말을 한다며 “증거가 없으니 별일 없겠죠?”란다. 증거가 없기는 뭐가 없나, 맞았다는 사람 진술이 가장 큰 증거지. 2주 정도 진단서까지 있으면 증거가 2개. 게으른 변호사는 “큰 이변이 없는 한 기소도 되고 재판도 받을 수 있고 좋은 게 좋은 것이니 웬만하면 합의하라”고 한다.
양 당사자 주장이 다를 때 제3의 증거가 필요한 민사사건과 달리, 형사사건에서 피해자(라는 사람)의 진술은 그저 ‘일방 당사자의 주장’인 게 아니라 언제나 제일 중요하고 기본적인 증거다. 그래서 한쪽이 일관되게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경우 사실이 아닌 일이 사실이 돼버리는 일도 종종 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의외로 살인 사건에서는 무죄판결이 많이 나온다.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증거인 피해자의 진술이 없어, 그러니까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법의학자는 그 ‘말없는 죽은 자’가 온몸으로 하는 마지막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다, 라는 대사는 요즈음 윤지훈 선생을 비롯해 너무들 자주 써서 상투적으로 들리지만, 전공 선택 과목인 법의학 수업 시간에 난생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감동이 돋았더랬다. 검찰 실무 수습을 마지막으로 검시나 부검에 참여하는 일은 열혈 여검사의 꿈을 포기하면서 멀어졌고, 변호사로 살인 사건을 맡은 경험도 없다. 이렇게 멋들어진 법의학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노동자의 산재 사망 사건에서 유족이 들고 오는 국과수의 부검감정서를 볼 때 괜히 숙연해지는 것은(물론 재판하다 보면 그 감정서를 깎아내리고 비난하는 일이 더 많지만), 아마 법의학이란 세계가 갖는 무게 때문인 듯하다.
이렇듯 차가운 시체가 뜨거운 진실을 전한다는 점에서 ‘드라마틱’한 법의학의 세계는 작가라면 누구나 탐낼 만하다. 그래서 수많은 스핀오프 시리즈가 존재하는 미국 드라마
그리고 오래 기다려온 보람이 있다. 이미 로 내공을 내비치신 김은희 작가와 그 남편 장항준 감독이, 그간 우리 드라마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짱짱하고 스릴 넘치는 재미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많이 신나고 응원하고 싶어졌다.
아울러 (드라마에 생뚱맞은 엄숙주의를 들이대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 재미와 함께 법의학, 나아가 진실에 다가서는 ‘과학수사’의 진짜 의미와 무게를 전할 것도 기대한다. 그래야 애먼 친구가 유서를 대신 썼다고 우기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다시는 없을 테니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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