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 K〉 때도 흔들리지 않던 ‘온리 지상파’ 브라운관 텔레비전 고수의 다짐이 흔들리고 있다. 그다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짐작들 하셨겠지만) 케이블이나 IPTV까지 달면 지상파 본방만 사수해도 텔레비전 앞 붙박이 인생이 그야말로 폐인으로 전락할 게 불 보듯 뻔해서였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게 다 때문이다. ‘김병욱 사단’이라면 무조건 열광할 열혈팬도 아니고, 하석진씨나 이영은씨 팬도 아닌데, 웬걸. 그렇게 되었다, 단지 1화만 보았을 뿐인데(제발 “1화만 보았기 때문에”가 되지 않길).
작가가 늘 그래왔듯, 우선 설정이 무지하게 기발하다(황당한 게 아니라 기발하다는 게 중요하다). 무지막지한 시골 생초리에 구조조정 대상인 증권사 직원들이 지점 통째로 옮겨오게 되는데, 거기에 벼락 맞아 절대 숫자감을 잃어버린 전 수학천재 싸가지가 함께 전근해 오고, 같은 지점에 근무했던 직원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는 설정. 캐릭터가 누구 하나 빠지지 않게 통통 튀고, 에피소드는 짱짱해 빈틈이 없다. 점심시간 전부터 떠들썩한 회사 풍경이나 얼큰히 취해 사장을 씹는 회식 장면을 재미나게 그리면서도, 그 짧은 시간(1회 방영 시간이 45분이다) 동안 벌써 이 어설픈 회사원들에 공감하고 애틋해하게 만드는 실감을 갖췄다. 웃기면서 뒤통수 치고, 범인을 궁금하게 만들면서 러브 라인에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그야말로 출격 준비를 끝낸 품세다. 게다가 번갯불에 콩 구워 먹게 쓰고 24시간 일주일 내내 찍어야 하는 일일 시트콤이 아니라 촘촘하기도 더할 것이요, 매체가 케이블이니 ‘빵꾸똥꾸’ 아니라 더 레알 돋는 용어를 내뱉어도 괜찮을 터, 그야말로 “좋지 아니한가!”.
그들이 생초리 지점으로 가게 된 사연은 이렇다. 몇 년째 실적이 공짜인 삼진증권 가리봉 지점 직원들이 술에 취해 사장 욕을 하다가(정확히 말하면 사장 이름을 부르다가- 이름이 ‘박규’다, 맞다, 서양 욕 ‘박규’) 해고될 위험에 처한다. 해고 요건도 안 되고 노조의 반발로 해고할 수도 없게 되자 대표는 “사장이 직원 하나 맘대로 못하는 게 무슨 기업 프렌드리야”라며 성질을 내는데, 그때 이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놓는 대안이라는 것이 “그만두지 않고는 못 배기게 시골로 전근을 보내자”고 한 것.
순간 직업병이 도져 마음이 무거워졌다. 지방으로, 평사원으로, 외근 영업직으로 밀려나도 차마 사표를 쓸 수 없던 의뢰인들의 얼굴이 생각나서였다. 얼마나 자주, 흔하게 있는지, 이제는 시트콤 속에서 보아도 별로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일이 돼버렸지만 막상 자기 문제로 닥치면 얼마만큼의 무게인지가 떠올라서.
그래서 생초리 지점 직원들이 “(우리도) 사람이었어!”라며 기분 좋게 하이킥을 날릴, 이 드라마의 앞으로를 더 기대한다- 여기까지 쓰고 있는데, ‘재생공장 공장장’ 야신 김성근 SK 감독이 토크쇼에서 말씀하신다. “사람은 결코 버리는 게 아니에요. 지도자는 아버지이고, 아버지는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김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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