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다행이다. 그쪽이 안 당해서. 처음으로 몸 바뀐 거, 잘됐다고 생각했어”. 김주원 사장의 손발 오그라드는 대사 중 하나다. 엄마의 모진 말을 대신 들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난 지금 처음으로 몸이 바뀌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길라임은 자신의 우상이던 오스카를 도와줄 수 있어 좋다며 같은 말을 한다. 왜 두 사람 모두 마음이 아니라 몸이 바뀌었다고 할까. 원래 드라마 카피는 ‘영혼이 바뀌고 나서야 진정한 자아를 찾게 되는 이야기’라고 했는데. ‘몸이 바뀌는 것’과 ‘마음이 바뀌는 것’이 같은 말이라서? (라임 몸을 한) 주원에게 라임의 마음은 “내 몸이잖아, 그러니 할 수 있어”라고 하고, 남자와 입 맞춘 (주원 몸을 한) 라임에게 주원의 마음은 “내 입술의 역사를 더럽혔다”며 욕지기까지 한다. 삐딱한 눈빛을 쏘는 라임 몸 속 영혼이 진짜 주원일까, 아니면 주원의 몸이 진짜 주원일까.
드라마 을 보면서 철학이나 인지과학에서 나옴직한 질문을 떠올리는 건 심하지만, 엉뚱하게도 지난 200년간 과학에서 일어난 현상이 겹쳐 떠오른다. 정신을 강조하던 생물학자들이 마음을 뇌 해부학과 생리학의 결과로 환원하려 하고, 거꾸로 물리학은 모든 현상에서 정신이 필요불가결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관점으로 이동한 것 말이다. 이처럼 흥미로운 정반대의 흐름은 결국 마음에서 시작해 마음으로 돌아가는 인식의 고리로 수렴된다. 말하자면 사람의 마음은 중추신경계 활동으로 설명할 수 있고 이 현상은 탄소·질소와 같은 구성원소로 설명되지만, 이런 원자물리학도 관찰자의 의식과 떨어질 수 없으므로 결국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감히 추측하건대, 비밀의 화원을 탐험 중인 우리의 두 주인공도 이런 단계를 거칠 것 같다. “몸이 바뀌었다”는 대사는 단순히 “마음이 바뀌었다”는 것을 바꿔 말한 게 아니다. 아직까지는 몸만 바뀐 단계이기 때문이고, 두 사람은 다른 연인들이 절대 체험하지 못할 서로의 몸을 낱낱이 겪고 자신을 한 발 떨어져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이 경험이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깊은 애정으로 발전하는 것은 당연할 터). 다시 한번 마음과 몸이 바뀐다면 그때는 ‘마음이 바뀐 단계’일 거다. “왜 이렇게 다리가 짧아”라며 상대방의 몸에 불평을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몸속으로 ‘마음’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원이 윗몸일으키기를 하며 라임에게 고백하는 신처럼 가슴을 쿵 떨어지게 하는 장면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마음이 상대방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즐겁게 기다리고 있다. 말도 안 되는 판타지이지만, 동시에 사랑에 대한 지극히 물리적인 도식화이기도 할 그 매혹적인 순간!
때로는 상투적이고 시도 때도 없는 간접광고가 눈을 찌푸리게 하며 폭력이 박력인 줄 알고 여주인공의 팔을 잡아끄는 남자 주인공에도 불구하고, 이 재미난 이야기를 써내는 김은숙 작가에게 보내는 찬사는 전혀 아깝지 않다.
김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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