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시작 혹은 끝에는 ‘벨렝’이라는 항구도시가 있다. 배들이 대서양과 아마존을 넘나들고 이방인도 많은 이곳은 브라질에서도 둘째라면 서러울 위험한 도시였다. 우리는 벨렝에서 3일을 지내며 아마존으로 들어가는 배삯을 흥정했다. 우리가 정한 목적지는 ‘산타렝’이라는 곳으로 아마존강을 거슬러 올라가 3박4일이 걸렸다.
우리는 4일 동안 작은 공간에서 재미난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뜨개질을 하려고 사둔 색실을 머리에 꼬는 것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이틀 만에 배 안에 있는 10명의 아이들에게 부탁을 받았다. 아이들은 이 거래(?)에서 자신이 줄 수 있는 땅콩이나 과자 한 주먹을 내놨다.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주변 사람들과 친구가 되기로 했다. 내 옆에 호랑이 문신이 있는 아저씨는 말이 없어 더 무서웠다. 그래도 핑크색 꽃무늬 이불을 덮고 자는 모습이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아마존강을 따라가는 배 안에서 보는 풍경은 한정됐다. 그저 황톳빛의 강물과 나무, 중간중간 집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강이 좁아졌다가 넓어졌다가 하는 풍경 외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배는 아마존강의 작은 마을들을 거쳐갔다. 인디오 아이들은 배가 지나가는 시간을 알고 작은 카누를 타고 나와 있었고, 배에 탄 몇 명의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입다가 작아진 옷가지들을 비닐봉지에 담아 그들에게 던져주었다. 물자 구하기가 힘든 그들을 먼 곳에 사는 이웃들이 돌보는 것이다. 이 작은 걸음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것에 희망을 느꼈다.
산타렝에 내리자마자 우리는 버스를 타고 ‘알테도샤우’로 향했다. 이곳은 ‘아마존의 카리브해’라는 별명을 가졌다. 하얀 백사장과 투명한 강물은 이제껏 배 위에서 본 황토물의 아마존이 아니었다. 그날 밤 우리는 한 가족을 만났다. 프레드손, 오드리, 자이언, 하라를 만나 ‘사랑의 섬’(Ilha do amor)에서 한 달간 함께 먹고 나누며 캠핑(멋진 말로), 아니 노숙을 했다.
프레드손과 오드리는 부부였다. 그들은 8년에 걸쳐 상파울루에서 아마존까지 히치하이킹으로 왔다고 했다. 그들이 소유한 것이라고는 망가진 텐트와 배낭, 그리고 그나마 값이 나가는 것은 사랑의 섬으로 매일 가족을 실어 나를 수 있는 10만원 정도에 산 중고 배가 전부였다. 돈은 장신구를 만들어 팔아 마련했다. 오드리는 사랑으로 가득 찬 엄마였다. 나에게 매듭 짓는 법을 가르쳐준 선생님이기도 하다. 자이언은 내가 아는 아이 중 가장 사랑스러웠다. 장난감을 많이 가져본 적이 없는 자이언은 자연에서 놀이감을 찾았다. 주로 나무조각, 돌, 아마존의 작은 물고기들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행복했다. 자이언에게 코바늘로 뜨개질한 어설픈 인형을 만들어주었으나 물속에서 가지고 놀다가 얼마 안 가 몸의 부위들이 해체됐다. 그들은 누가 봐도 거리의 가족이었다. 그들이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다. “부에나 비다.”(Buena Vida.) ‘인생 참 좋다’는 말인데, 세상 사람들이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이들의 말에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누가 뭐래도 그들은 행복했다.
그곳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룹 안에서 개인의 공간을 찾는 것과 그것이 이기적인 게 아니라 당연하다는 것, 아이들과 노는 것과 자연을 사랑하는 것, 더러움에 익숙해지는 것, 나만의 장신구를 만드는 것, ‘정글 화장실’을 쓰는 것, 바나나 하나로 배고픔을 잊는 것, 신발 없이 다니는 것(누군가가 신발을 훔쳐갔다), 해먹에서 자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새벽 추위에는 익숙해지는 법이 없었다.
김지영 히피 여행가
<font color="#638F03">*김지영씨는 인도양 안다만의 배 위에서 만난 스페인 남자 다리오와 함께 4년째 여행 중이다. ‘배꼽두개’로 불리는 부부가 아마존·안데스 등에서 자연과 함께 살기, 유럽에서 무일푼으로 살기 등 세계를 집 삼아 살아온 얘기를 들려줄 것이다.</font>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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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