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덴테를 무시한 사람도 있다. 빌 버포드라는 미국 기자다. “프레시 파스타(생파스타)는 말린 것보다 덜 까다롭고 요리의 주안점도 다르다. 알 덴테니 하는 것엔 신경을 쓰지 않는데, 탱글탱글한 씹는 맛보다 부드럽게 투항하는 느낌을 중시한다.” 버포드의 책 에서 이 구절을 읽으며 알 덴테에 집착하는 내가 잠시 부끄러웠다. 부끄러움 직후에는 언제나처럼 몹쓸 공격 심리가 스프링처럼 튀어나왔다. 그래, 난 싸구려다.
제국의 잘난 기자에게 제3세계 기자가 갖는 열등감을 공격 본능으로 만회하는 심리 기제가 아니냐고 비판하지 말기 바란다. 근처 대형마트에서 내가 구입한 ‘디벨라’(Divella) 건파스타 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Cottura Time: 7min.’ 코투라(cottura)는 영어의 쿠킹에 해당한다. 7분을 삶으라는 건 근거 있는 얘기였다. 부드럽게 투항하는 맛, 따위는 건파스타에 허용되지 않는다. (독신남이 어떻게 생파스타를 만드냐고요!)
가스레인지 왼편에 물을 채운 냄비를 올렸다. 조리법대로 한 방울의 올리브유와 소금을 떨어뜨렸다. 오른편에도 불을 켰다. 올리브유를 한 큰술 끼얹은 프라이팬은 곧 달아올랐다. 마트에서 함께 구입한 쪽마늘을 넣었다. 기분 좋은 알싸한 향이 피어올랐다. 치이이익! 해감한 바지락을 프라이팬에 부었다. 여름휴가 때 일본 규슈의 시골 바닷가에 첨벙 뛰어들었을 때 입술에 묻은 바닷물의 적당히 짠 내음이 집에 퍼졌다. 몇 분 뒤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조개 등 해산물을 익힐 때 화이트와인이나 그라파(포도로 만든 증류주)를 붓는다. 비린내를 날리기 위해서다. 이게 ‘플람베’다. 영어로 ‘플레임’, 즉 불꽃이다.
바지락이 서서히 입을 벌릴 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올리브유를 끼얹었다. 그리고 몇 초 뒤 나는 프라이팬을 놓고 앞머리부터 매만져야 했다. 거대한 불꽃에 화들짝 놀랐다기보다, 숱이 적은 머리카락이 탔는지 걱정됐기 때문이다. 앞머리는 이상 없었지만 덕분에 온 집 안에 바지락 냄새가 뱄다. 싱크대 옆 빨래건조대에도, 방문에 걸어놓은 와이셔츠에도. 와인이 아닌 기름으로 만든 플람베라니.
정확히 7분을 삶은 파스타를 건졌다. 프라이팬에서 입을 벌린 바지락 위에 파스타를 던져 좀더 볶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알 덴테는 ‘아닌데’였다. 박찬일 요리사는 에서 “뜨거운 소금물을 빨아들여 적당히 통통해진 표면이 부풀어 오르면 미끈한 자태로 변하게 되는데 바로 그때가 타이밍인 것이다”라고 썼다. 난 ‘미끈한 자태였는지’ 살피기보다 ‘7분’이라는 시간에 집착했다. 먹을 만했지만 면은 딱딱했다. 요새 이가 안 좋은 어머니였다면 파스타 가락을 휙 던져버리셨을지도. 그래서다, 일주일뒤 다시 도전한 봉골레 파스타를 8분 삶은 이유는. ‘뭐든 직접 해봐야 깨우친다’는 평범한 진리를 서른 넘어서도 아직 몸으로 배우고 있다, 젠장.(난 언제 익나? 그냥 이렇게 평생 알 덴테?)
고나무 기자 한겨레 정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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