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시름시름 아팠다. 학교 들어갈 나이가 됐어도 일어나 앉지 못했다. 열기 어린 눈을 뜨고 소녀는 꿈을 꿨다.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다 보였다. 오빠가 ‘라면땅’을 어디에 감췄는지도 보였다. 잠들지 않았는데 낯선 형체가 자꾸 눈에 어른거리는 것을 소녀는 꿈이라고만 생각했다.
정순덕(44·이하 정) 8살 되던 해, 봄이었어요. 고향 충남 서산 옥녀봉에 진달래가 피었어요. 어느 날, 갓 쓴 할아버지가 백마 타고 와서 “순덕아” 불러요. 나한테 칼, 탱화, 방울을 주세요. 두 손에 받고 돌아서니 몸이 막 떨려요. “할아버지, 몸이 떨려요” 했더니, 백마 탄 할아버지가 말씀하세요. “순덕아, 이걸로 죽을 인간 살리고, 병든 인간 고치자. 이걸로 너랑나랑 밥 먹고 살자.”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할아버지가 ‘백마신장’이셨어요. 경호실장처럼, 천상의 신을 보위하는 최고 신장이시죠.
황해도 출신 실향민인 어머니는 고향이 같은 다른 무당을 찾아 막내딸에게 ‘내림굿’을 치르게 했다. 구경하러 사람들이 몰려왔다. 황해도 굿을 하는 애기무당이 불쌍하다고 사람들은 훌쩍거렸다. 1975년 5월이었다.
신내림 받은 소녀와 신학자 꿈꾼 소년
소년은 강물이 핏물로 물들었던 탐진강 근처에서 태어났다. 전남 장흥은 동학 농민군이 죽어간 마지막 전쟁터였다. 소년은 기독교에 심취했다. 개신교 세례를 받았다. 신학을 공부할 생각으로 종교학과에 진학했다. 소년은 신학자의 꿈을 꿨다.
김동규(42·이하 김) 대학 축제 때, 종교학과 행사의 하나로 굿을 했어요. 제가 직접 ‘한양굿’을 대충 보고 따라 했지요. 신내림하곤 아무 상관 없고 그냥 연기였어요. 공부하면서 점점 무속에 끌렸죠. 다른 종교에 비해 자유롭잖아요. 제도화된 종교는 진리를 소유한 사람들이 따로 있어요. 종교 자체가 거대한 훈육이죠. 그런데 무속은 거대한 진리를 말하지 않아요. 무속의 소비자들도 자유롭게 왔다가 떠나죠. 무당은 그저 사람의 이야기를 신에게 고하고, 신의 이야기를 사람에게 들려주는 대리인이죠.
1989년 김씨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지식인들은 민중문화의 하나로 굿을 재해석하고 있었다. 젊은 무당이던 정씨는 그런 지식인들과 곧잘 어울렸다. 종교학도인 김씨도 그 결에 정씨를 만났다. 어느 날, 두 사람은 다른 무당·학자들과 함께 계룡산에 올랐다. 정씨는 제사를 위해 산에 올랐고, 김씨는 그런 정씨를 관찰·조사하려고 뒤를 따랐다.
정 하얀 소복을 입은 키 작은 할머니가 꿈에 나타났어요. “순덕아, 저기 네 신랑감 있네.” 할머니가 누워 자는 이 사람을 가리켰어요. 그 전까진 아무 느낌 없었거든요.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계속 이 남자를 쳐다봤지요. 1997년 겨울, 음력 시월 초이틀이었어요. 제가 먼저 말을 꺼냈지요. 사랑한다고 하진 않았어요. 당신은 내게 소중한 사람이라고, 신령님 다음으로 소중하다고 했지요.
김 소중하다는 그 말이 좋았어요. 평소에도 사랑한다는 말보다 소중하다는 말이 더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혼인은 신령이 점지했지만, 결혼식은 특별할 게 없었다. 평범한 예식장에서 남들처럼 결혼했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다. 신부는 신령이 그려진 부채를 들고 갔다. 호텔 화장대 위에 신령을 모셔놓고 첫날밤을 보냈다.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신접살림을 꾸몄다. 아내 정씨의 신당을 만들고, 남편 김씨의 서재를 만들었다. 정씨의 방에는 탱화와 삼지창이 있고, 김씨의 방에는 영어책과 컴퓨터가 있다. 반상회에 나가면 “무당 때문에 아파트값 떨어진다”며 주민들이 대놓고 이죽댔다. 남편 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주민들은 이웃 몰래 아내 정씨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았다. 열에 일곱이 그랬다.
김 무당은 ‘강신’(降神), 즉 신내림의 전문가죠. 늘 신들린 것이 아니라, 신내림을 의도해 받는 사람이지요. 그 점에서 무당과 미친 사람은 달라요. 무당은 사회·문화적으로 용인된 환경에서 스스로 신을 부르는데, 광인은 신내림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조건에서 아무 때나 접신하지요. 길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은 잡신에 들린 광인이라고 무속에선 이해하지요.
정 항상 신이 내린 상태라면 제가 힘들어서 못 살아요. 접신은 굉장히 힘들고 고된 일이에요. 저는 미아리 고개에서 간판 내걸고 점 봐주는 사람들과 달라요. 산 자와 죽은 자를 이어 풀어주고, 돌아가신 영혼을 극락세계로 보내는 무당이지요.
김 한국의 무당은 세계적으로도 독특하죠. ‘샤머니즘’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류 문명의 공통된 현상이지만, 다른 나라는 전통 샤머니즘의 단절을 한 차례 이상 경험했거든요. 그런데 유독 한국의 무속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단절 없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요. 무속인 모임인 ‘대한경신협회’에 가입된 회원 수만 현재 30만명이 넘습니다. 다른 나라 인류학·종교학자들은 한국 무속에 관심이 많아요. 외국에선 인류학자를 중심으로 ‘샤머니즘 학회’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거든요.
시절이 수상하니 잡귀가 늘어김씨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연말이면 학위 논문도 낸다. 김씨가 한국에 들어오면 부부는 무속의 언어와 사회과학의 언어로 대화한다. 귀신은 무엇인가? 정씨는 “돌봄받지 못한 죽은 자의 원혼들”이라고 말한다. 김씨는 “귀신을 학문적으로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귀신을 둘러싼 담론이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한다. 귀신과 싸우는 굿은 여름 한철을 제외하면, 가을부터 봄까지 쉴 새 없이 계속된다. 요즘 굿은 집 마당이 아니라 도시 외곽 ‘굿당’에서 한다. 하루 20만~25만원을 내면 굿 장소를 빌릴 수 있다.
정 전날 저녁 6시, 굿당에 들어가요. 굿을 주관하는 무당, 장구 치는 상장구 할아버지, 징 치는 징잡이, 제자무당 등 대여섯 명이 함께 들어가 준비를 하죠. 향나무 삶은 물로 먼저 몸을 씻고, 탱화를 순서대로 모시고, 음식 차려 올리고, 정화수 두고 절하면서 “어느 집의 굿하러 왔습니다” 하고 신령님께 신고해요. 잠들면 꿈에 신령님이 나타나죠. ‘선몽’이라고 하는데, 다음날 굿을 어떻게 치를지 말씀해주세요.
김 굿은 어그러진 질서를 회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이죠. 굿을 의뢰한 사람은 무당의 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통해 스스로 성찰하면서 문제가 무엇인지 인식하지요. 그게 곧 문제 해결의 실마리이기도 하고. 종교적으로 보자면, 조화로운 세상의 질서가 어그러졌으니, 신령님을 대접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달라고 청원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원래 굿은 24거리였다. 24개의 작은 마당으로 이뤄지는 셈이다. 옛날 무당은 한 번 굿을 하면 3박4일 동안 계속했다. 요즘은 12거리를 하루에 마친다. 굿당에서 함께 잠들었던 무당들은 굿하는 날 아침 6시에 일어난다. 신령에게 밥을 올리고, 곱게 단장하고, 아침 8시 무렵부터 굿을 시작한다. 집안의 번창을 바라는 재수굿, 죽은 자의 저승천도를 바라는 지노귀굿, 집안의 큰일을 고하는 여탐굿 등 목적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뉘는데, 지역에 따라 그 이름이 또한 제각각이다.
그러나 목적이 무엇이건 굿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같다. 굿당의 부정을 풀어 정화하고, 굿을 하겠다고 하늘과 땅에 신고한다. 그리고 산신, 굿하는 집안의 조상, 자손 잉태와 부부 화합을 관장하는 칠성, 집안일을 관장하는 성주, 재물을 부르는 대감, 무당이 모시는 다른 신령, 신령을 지키는 신장, 여러 돌아간 영웅인 군웅 등을 차례로 불러 대접한다. 그러다 신령과 접신해 그 말을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마침내 신령의 힘을 빌려 잡귀와 잡신을 물리친다.
정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잡귀와 잡신, 즉 귀신들이 너무 많이 늘었어요. 우선 무녀가 갑자기 많아졌어요. 세월이 혼란스러울수록 사람들의 정과 신, 정신이 흔들리는데, 진짜 신령님한테 내림받은 게 아니라, 잡신한테 들렸거나 잡신도 아닌 헛것을 본 사람들이 무당입네 나서고 있어요. 지난해부터는 저를 찾아오는 사람도 늘었어요. 마음과 기운이 약해지면 귀신이 사람에게 들러붙어 그를 지배해요. 그리고 계속 다른 귀신을 불러모아요.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귀신이 들러붙는 게 아니라, 귀신이 붙으면 나쁜 짓을 하게 돼요. 지금 한국에 그런 사마의 기운이 쌓인 사람이 너무 많아졌어요. 예전 외환위기 때하고 비슷해졌지요. 시절이 좋지 않으니, 사람들이 거기에 휘둘리는 거지요.
김 무속에서 귀신은 일종의 깡패 같은 겁니다. 깡패는 아무한테나 시비 걸지요. 귀신이 늘어나면 그 귀신 때문에 무작위로 피해받는 사람이 늘어나는 거죠. 이런 무속의 해석을 그저 ‘미신이 활개친다’고 표현하는 것은 사회적 문제를 사회적 약자인 무속 실천자들에게 돌리는 담론이지요.
정 무당들은 1년에 두 번 마니산 첨성단에 올라 천지를 모시는 제를 올려요. 특정 개인이 아니라, 나라와 세계의 평안을 축원하는 거죠. 그런데 지난해부터 제사를 지낼 때마다 사무치도록 슬프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천제를 모시는 무당인데도 두려움을 느꼈어요.
김 여러 무당의 생애사를 조사한 연구가 있는데, 그 결론을 보면 대개 무당은 감수성이 풍부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민감하다고 적고 있어요. 뭐랄까, 역사적 변화에 빠르게 감응한다고 할까요. “잡귀가 늘었다”는 이야기를 아내가 자주 하는데, 시절이 힘들고 나랏일이 많이 고달프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 같아요.
최근 정씨의 ‘몸주신’에 변화가 생겼다. 무당마다 주로 모시는 신령을 말하는데, 정씨는 단군 할아버지와 사신(四神) 할아버지를 모셨다. 단군 할아버지는 그대로인데, 얼마 전부터 사신 할아버지가 뒤로 물러나고 천문(天文) 할아버지가 앞으로 나서고 있다. 사신 할아버지는 재물의 운수를 관장하고, 천문 할아버지는 길흉에 대한 하늘의 뜻을 드러낸다. 정씨는 하늘의 뜻을 전하려는 신령의 기운이 더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정씨는 긴장하고 있다. “앞으로 신장님이 등장할 일이 많아질 것”이라고 정씨는 말했다. 신장은 악귀를 쫓아내는 하늘의 장수다.
정 귀신을 쫓아내려면, 우선 하늘에 있는 48만 신장님들을 모두 청배합니다. 제가 신장님의 몸에 실려야 잡귀와 싸울 수 있어요. 접신하면 에너지가 생겨요. 굉장히 행복해지지요. 그런데 장군님들이 몸에 실리면, 행복하고 말고 할 겨를이 없어요. 당장 잡귀가 눈에 들어오니까요. 말발굽 달리면서 적의 목을 쳐야 하는 상황인데, 말 타고 있어 행복하다 할 틈이 있겠어요? 신장님이 강림하면 귀신들이 순간순간 보여요. 사람으로 보일 때가 있고, 동물 비슷한 형태로 나타날 때가 있고, 얼굴이 뚜렷하지 않거나, 눈 하나 코 하나를 달고 나타나기도 하고, 소복 입은 여자가 있는가 하면, 희미한 안개나 수증기로 나타날 때도 있어요.
김 무당이 작두를 타는 것은 그런 귀신에 맞서는 신령님의 위력을 보여주는 의례입니다. 작두 위에 올라가 한두 시간 동안 ‘공수’(신령의 말을 전하는 행위)를 하지요.
정 잡귀신 가운데 뜬귀·객귀는 먹을 것을 주면 물러나지요. 그런데 악귀는 달라요. 먹을 것을 줘도 끄떡도 않지요. 오랫동안 귀신이 붙으면 산 사람한테서 쉽게 떨어지지 않지요. 귀신 붙은 사람도 악귀처럼 흉포해지지요. 그런 귀신들은 달래거나 대접해선 물러가지 않으니, 신장님의 힘을 빌려 벼락을 쳐야 해요. 불을 내려 없애버리는 거죠.
김 귀신에게 고통받는 실체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인 것으로 한국의 무속은 이해하죠. 무당에게 굿을 청하는 주체는 고통받는 당사자가 아니라 그 가족이거든요. 귀신 들린 개인은 개별적 자아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 속에 있는 자아로 굿판에 등장하죠. 귀신은 그 고통을 형상화한 것이고. 굿이 ‘공개적으로’ 열리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귀신 들린 사람의 고통을 무녀가 공개적으로 치유하면서 개인의 고통이 주변인의 공감을 거쳐 사회적 치유의 틀로 변화하는 겁니다.
낮은 목소리에 귀기울여야정씨는 확실히 보통 무당은 아니다. 신내림받은 ‘강신무’고, 8살 때부터 접신한 ‘애기무당’ 출신이고, 남쪽에선 보기 드문 황해도 굿을 한다. 그는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1년, ‘국풍81’ 무대에 올라 굿을 했다. 남편 김씨는 ‘국풍81’에 대해 “무속을 전통문화로 해석하려는 정치적 기획이었다”고 평가했다. 어쨌건 정씨는 이 일로 유명해졌다. 서울 잠실주경기장에서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위한 ‘성공 기원 굿’을 했다. 동시에 1987년 이한열 열사 진혼굿과 1988년 박종철 열사 1주기 진혼굿도 했다. 1996년 경기 고양시 금정굴 양민학살 진혼굿을 했고, 1998년 제주 4·3 희생자 진혼굿도 했다. 어느 개인과 가족을 위한 굿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제를 올리는 ‘나라굿’에 대한 책무감이 그에게 있다.
정씨는 숭례문에 대해 말했다. 남쪽은 따뜻한 기운과 재수를 주는데, 이를 지키는 주작은 지혜롭고 현명한 존재다. 숭례문은 그 상징이었다. 그것이 불타버렸다. “복원 공사가 끝나고 상량식을 할 때, 온 국민의 혼을 모아 나라굿, 재수굿을 해야죠.” 김씨는 낮은 목소리에 대해 말했다. “민중 또는 대중은 큰 목소리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죠. 지도자는 그 속삭임에 귀기울이는 사람이고. 그런 역할이 필요한 것 같아요.” 두 부부가 무속을 통해 이루려는 꿈이 거기에 있다. 힘겨워 속삭이는 사람들에게 귀기울이기. 그걸 굿으로 풀어야 할 일이 많아져 부부의 근심이 크다.
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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