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산책자 펴냄, 1만2천원
“나는 독자 여러분께 바란다. 1800만 명의 생명이 매년 죽어가는 세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생명이 덧없이 꺼져가는 이 세계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사는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시기를!” 동물해방론자이자 세계적인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가 에서 던지는 제안이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싱어의 대답은 간명하다. 절대 빈곤의 덫에 걸린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야 한다. 저자는 그렇게 남을 돕지 않는 한 우리는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살 수 없다는 걸 입증하려 하며, 우리 모두가 더 많은 소득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일깨우고자 한다.
기부를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 6가지책의 원제는 ‘당신이 구할 수 있는 생명’(The Life You Can Save)이다. 책의 취지에 맞추자면, ‘당신도 구할 수 있는 생명’이란 뜻으로 새겨도 좋겠다. 가령 출근길에 항상 지나는 작은 연못에 한 아이가 빠졌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아이는 몇 초 동안만 고개를 내밀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다. 물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고 위험하지 않다. 단지 며칠 전에 산 새 신발과 양복이 더러워지고 출근길이 늦어질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경우 “그냥 돌아가겠다”고 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들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비하면 신발이나 지각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게 현재의 지구촌 현실이라고 싱어는 말한다.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신발이 젖는다고, 지각한다고 죽어가는 아이를 모른 체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엔아동기금 자료를 보면, 아직도 매년 970만 명의 5살 이하 어린이가 빈곤 때문에 사망한다. 이들의 목숨 하나를 살리는 데 신발 한 켤레 값 정도밖에 들지 않는데도 말이다. 자주 사서 마시는 생수를 비롯해 외식, 옷, 영화, 콘서트, 휴가 여행, 집 단장에 돈을 쓸지언정 죽어가는 아이에 대해선 모른 체한다고 싱어는 꼬집는다. 물론 그런 ‘무관심’에도 뭔가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싱어는 기부를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를 6가지로 분석한다. 인식 가능 희생자 효과(눈에 보여야 돕는다), 헛수고라는 생각, 왜 나만 도와야 하느냐는 생각 등이다. 더불어, 우리의 진화적 본성은 다수보다는 특정 개인에, 멀리 떨어진 곳의 사람보다는 가까운 사람을 대할 때 더 예민하고 신속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그러한 도덕적 직관이 그 자체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며 현재와 같은 지구 공동체 사회에서는 우리 책임의 범위를 더욱 확장시켜야 한다는 것이 싱어의 주장이다.
대외 원조에 인색한 나라, 한국
물론 이제까지 구호의 손길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50년 동안 서방세계에서 구호에 쏟은 비용이 2조3천억달러라고 한다. 연간 460억달러며, 1인당 매년 60달러를 부담한 것이 된다. 총소득의 0.3%다. 이러한 기부에도 아직까지 빈곤 퇴치에 성공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건 그동안 너무 조금만 퍼주었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그건 우리 처지를 돌아봐도 마찬가지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싱어가 밝힌 한국의 대외 원조 규모는 국민총소득의 0.09%로 유엔이 권장하는 대외 원조액(국민총소득의 0.7%)에 한참 못 미친다.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게 최하위권에 속하는 미국과 일본도 한국의 두 배 수준이다. 대외 원조에서 한국만큼 인색한 나라도 드문 것이다. “우리도 먹고살기 힘들다”는 푸념을 입버릇처럼 늘어놓지만, 싱어의 말대로 “우리 상황이 최악의 최악이라도, 절대 빈곤에 떨어져 있는 사람들보다는 낫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부가 더 많은 대외 원조를 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일 외에도 개개인이 자기 소득의 5% 이상을 기부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적인 제안이다. 거기에 덧붙여 제도적으로는 적절한 형태의 ‘넛지’를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해봄직하다. 가령 봉급에서 일정 비율을 기부의 디폴트(초기 조건)로 지정하는 것인데, 우리가 알지만 실천하지 않는 올바른 행동을 실천할 수 있게 해주는 방책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올바른 행동이란 물에 빠진 아이를 당장은 건져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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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3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