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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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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권이 어떡해요ㅠㅠ


2AM이 첫 1위를 하고 조권이 펑펑 운 날, 팬들의 게시판도 따라 우네…
일상적 실천 또는 즐거운 유희, ‘팬질’의 세계
등록 2010-04-01 16:11 수정 2020-05-03 04:26
오랜 연습생 기간을 거친 2AM의 조권에게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 1위는 각별한 의미를 주었다. 연합

오랜 연습생 기간을 거친 2AM의 조권에게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 1위는 각별한 의미를 주었다. 연합

도서관 구석, 벽을 등지고 노트북을 연다. 팬카페에 들어가자니 영 눈치가 보여서 말이다. 하루 일과처럼 게시판을 훑는다. 하루하루 분위기가 달라지는 요즘이라 매일 확인하지 않으면 따라가기가 힘들다. 음원 순위에서 2AM의 가 1위를 기록할 때만 해도 즐겁기만 했다. 그런데 소녀시대가 높은 음반 판매를 바탕으로 한국방송 가요 프로그램 1위를 하고는 다들 우울해했다. 이틀 뒤인 2월7일 SBS 에서 드디어 2AM이 첫 1위를 하고 리더 조권이 펑펑 울었을 때에는 온통 감동의 도가니였다.

사실 1위라는 게, 참 별거 아니다. 그런데 조권이 말하길, 1위를 했더니 차와 식단이 바뀌었단다. 이미 1위는 객관적 인기도의 확인이라기보다, 팬이 아이돌에게 주는 선물에 가깝다. 선물을 안겨주기 위해 팬들이 달린다. 커뮤니티에는 실시간으로 각종 음반·음원 순위 통계 및 구매·투표 링크가 경신되고, 팬들은 구매와 투표에 힘쓴다. 이른바 ‘능력자’ 팬들은 홍보 이미지와 영상을 제작해서 올리고, 방송 관계자들에게 음식 선물을 ‘조공’한다. 아쉽게도 2AM은 끝까지 1위를 못했다. 대중적 인지도에 비해 팬층이 얇은지라, 강력한 ‘삼촌팬’ 군단을 가진 소녀시대의 음반 판매량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앗, 후배가 아는 척을 한다. 반사적으로 ‘alt+tab’을 눌러 컴퓨터 창을 전환한다. 어색한 눈인사를 나누고 다시 게시판을 본다. 후속곡이 나온 터라, 이번에야말로 1위 시켜주자며 절치부심을 외치는 글이 많다. 이렇게 1위를 만들어가는 동안 팬들은 내가 무언가를 바꾸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만든다’는 순간부터 1위를 ‘조작한다’는 혐의를 피해갈 수 없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이는 절실하고 즐거운 놀이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거다.

삶의 고단함을 잠시간 잊고, 내가 1등을 향해 달려간다는 즐거운 착각에 행복해한다. 팬들은 상술에 넘어가 음반과 음원을 강매당하는 게 아니라, ‘고객님’으로서 기꺼이 아이돌의 행복과 나의 즐거움을 구매한다. 팬이라는 이름만으로 친밀해지고 그 범위가 국경을 넘어가는 데 꼭 거창한 무언가가 필요치 않다. 그 안에서 다른 이들과의 소통을 배운다. 한편으로는 거대 기획사라는 기업 앞에 힘없는 노동자로서 계약의 부당함을 말했던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 한경을 보며, 연예산업 구조 내 노동자이자 상품으로서의 아이돌을 이해한다. 무력한 팬이 돈이 있으면 ‘고객님’이 되어 ‘상품으로서의 아이돌’을 호명하는 것을 보며, 자본과 권력에 대한 희미한 감수성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간 아이돌의 사생활을 좇는 일부 팬, 혹은 사건·사고와 연결돼 문제적 대상으로만 언급되었던 ‘팬질’은 이미 하나의 ‘문화’로서 많은 이들의 삶에 일상적인 실천이 되었다. 그 실천 속에서 팬들은 다르지만 치열하게, 하지만 즐거운 유희로 세상을 배우고 살아가고 있다.

오늘의 음반·음원 순위를 보며 내심 기대를 걸어본다. 마침내 1위를 해, 감동에 푹 절어 우는 권이와 진운이를 보고 싶다. 게시판도 같이 울 거다. ‘우리 권이 어떡해요.ㅠㅠ’ 기분 좋은 상상과 함께 노트북을 닫는다.

강혜경 중앙대 사회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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