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고 했나? 세상이 그렇게 두 동강으로 심플하게 나뉠 수는 없지. 화성을 떠난 지 가장 오래되었지만 가장 화성인다운 남자, 갓 화성에서 탈출해 금성인과 같이 살게 된 남자, 영원히 화성에서 놀 거라며 촐랑대는 남자, 이런 화성의 짐승들과 껴안고 살아야 하는 금성 출신의 여자들. 폭스라이프의 (Rules of Engagement)은 이렇게 서로 다른 외계에서 온 종족들이 기묘하게 얽혀 사는 공식을 파헤친다.
갓 약혼해 달콤한 동거에 들어간 아담과 제니퍼, 너무 오래 같이 살아 결혼기념일도 가물가물한 제프와 오드리, 한 여자와는 하룻밤이 아니라 두세 시간만 같이 있어도 지겨워지는 바람둥이 독신남 러셀. 이렇게 다섯 주인공이 알콩달콩 사랑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내는데, 그 재미의 핵심은 역시 툭탁거리는 말다툼이다.
먼저 고전적인 남녀의 대결. 다정다감한 문화생활을 즐기려는 오드리와 뉴욕 닉스의 경기 결과에 목숨을 거는 제프의 대화는 언제나 이런 식이다. “이제 우리 메트도 갈 수 있어요.” “메츠(뉴욕 메츠 야구단)?” “아니,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글자 하나로 최고의 소식이 쓰레기가 되었네.” 그도 그럴 것이 제프에게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는’ 일은 ‘주일도 아닌데 노래 부르는 사람을 보러 가는’ 거니까.
초등학생처럼 게임기에 매달려 거액을 축내는 아담과 미용실 다니는 돈은 상식적인 생활비라고 주장하는 제니퍼의 대결도 만만찮다. 아담이 옛 여자와 같이 쓰던 침대를 단지 크고 편하다는 이유로 침실로 들여오자, 둘은 과거의 연인이 준 물건을 하나씩 꺼내놓는 배틀을 벌인다. 이런 꼴을 보며 제프는 거드름을 피우며 선배로서 조언을 내놓는다. “우린 복싱 링처럼 큰 침대를 쓰잖아. 링 가운데서 엉겨붙었다가 구석으로 돌아가 쉬지.” 그러자 오드리가 다리를 건다. “하하, 그렇지. 복싱처럼 3분을 넘기지 못하지.” “3분을 넘기려면 스포츠 뉴스 시간은 피하자니까.” 한 커플의 다툼이 다른 커플의 다툼으로 번지는 건 시간문제다.
여기에 초단신이면서도 쭉쭉빵빵 여자들만 사귀는 러셀이 끼어든다. 이 남자의 장기라고는 역시 말발인데, 젊은 여자 앞에서는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여기 멋진 남자는 약혼했고, 저기 킹콩은 결혼했지요.”
요즘 TV는 연애보다는 결혼, 그러니까 달콤함보다는 씁쓸함에 가까운 관계에 더 큰 흥미를 보이는 것 같다. 는 서로 얼굴도 모르는 청춘 남녀를 바로 결혼 생활에 입소시키고, 와 는 연예인 부부들의 생활 속으로 카메라를 들이댄다. 예전과 달리 우리 TV도 안방의 이야기를 서슴없이 까보이지만, 좀더 직설적이면서도 경쾌한 대화를 듣고 싶다면 의 조항들을 하나씩 들춰보시라.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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