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26일, 경기 군포시 산본 자택에서 리영희 선생을 만났다. 팔순(2009년 12월2일)을 앞둔 선생과 인터뷰했다. 안수찬 기자와 동행했는데 안 기자가 그렇게 예의를 갖추는 모습은 처음 봤다. 덩달아 나까지 2시간여 내내 허리를 곧추세우느라 안간힘을 써야 했다.
과거의 위인이 아니라 오늘을 보는 ‘프리즘’
〈리영희 프리즘〉
인터뷰 내내 선생의 자세도 꼿꼿했다. 어조는 힘찼다. 당시 선생은 팔순 잔칫상을 마련하겠다는 ‘후학’들의 정성을 마다했다. “패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다”고 선생은 말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라며 ‘우상’과 맞서온 그의 냉철한 이성은 팔순에 이를 때까지도 형형하게 빛났다. 그 인상이 너무도 강렬해 주변 친구들에게 그를 만났다고 자랑했다. 1980년대에 태어나 2000년대에 대학을 다닌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이렇게 반문했다. “리영희가 누군데?”
리영희가 누군지 모르는 세대부터 그를 ‘사상의 은사’로 여기는 세대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세대도, 직업도, 전문 분야도 다른 10명의 인물이 각자의 ‘리영희’와 마주하며 글을 썼다. (사계절 펴냄)이다.
선생의 팔순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됐지만 그에게 바치는 책은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리영희’는 과거의 위인이 아니라 오늘을 보는 ‘프리즘’이다. 책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에 각각 청춘을 보낸 필자들이 ‘리영희’를 어떤 방식으로 소비했는지 각도를 달리해 보여준다. 동시에 2010년에도 필요한 ‘리영희 정신’을 곱씹어낸다. 필자들은 각자의 세계에서 종적·횡적으로 리영희를 톺아본다. 그 업적을 찬탄하는 대신 그가 남긴 자취가 오늘에 이르러 어떤 의미인지 비판적으로 점검한다.
리영희는 한국전쟁부터 군사독재 시절에 걸쳐 통역장교, 기자, 교수 등으로 활동했다. 그의 글은 당대를 후비고 도려내 파냈다. 특히 그의 책 (1974), (1977) 등은 많은 이들에게 ‘의식의 전환’을 불러일으켰다. 서로 다른 필자들을 관통하는 대목이 있다. 리영희를 기리는 것은 그의 사상과 논리가 탁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사상과 논리를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다. 은 그런 ‘의식의 전환’을 오늘에 이르러 다시 도모하자는 제안인 셈이다.
10명의 집필진은 선생이 뿌린 씨앗에서 각자의 줄기를 키워냈다. ‘생각하기’(고병권 수유너머 R 연구원), ‘책 읽기’(천정환 성균관대 교수), ‘전쟁’(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종교’(이찬수 종교문화연구원 원장), ‘영어 공부’(오길영 충남대 교수), ‘지식인’(이대근 논설위원), ‘기자’(안수찬 사회팀장), ‘사회과학’(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청년세대’(한윤형 자유기고가) 등 9개의 줄기와 김현진 에세이스트의 리영희 선생 인터뷰가 책 한 권에묶였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또 다른 줄기들이 움튼다. 10명의 필자에게 결정적 영향을 준 리영희의 ‘원전’이 궁금해진다. 리영희의 수많은 저작들로 독자를 이끈다. 거기서 21세기의 독자는 두려움 없이 우상과 맞섰던 70~80년대 지식인 한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 지식인이 드문 오늘의 현실을 한탄하게 될 것이다. 나부터 그 노릇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언론인이자 지식인이었던 리영희가 팔십 평생을 바친 길이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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