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참 요상한 동물이다. 온몸이 덜덜 떨리고 등골이 으슬으슬해지면 실없는 농담을 뱉어낸다. “야, 사실 우리 중 하나가 귀신이었던 거 아냐?” 또 좋다고 받아준다. “허허, 그러게. 나중에 그놈 잡으면 다리를 분질러줘야지.” “야, 귀신은 다리가 없잖아.” 으하하하, 웃음이 터지고 그 웃음이 식을 즈음에는 등골이 더 서늘해져 있다.
코미디의 한쪽 세계는 스릴·호러·서스펜스에 발을 푸욱 담그고 있다. 데이비드 린치의 와 라스 폰 트리에의 이 그랬고, 역시 이 재미를 만끽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 온탕·냉탕의 재미를 전해줄 존재가 나타났다. 케이블TV ‘패션앤’이 영국 에서 2009년 9월부터 방영한 8부작 시리즈를 재빨리 가져왔다. ‘에로틱 캠퍼스 스릴러’라고 카피를 달았는데, 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세 축 중 하나를 코미디로 바꿔야 성스러운 삼위일체가 완성될 것 같다.
명문 기숙사제 기독교 학교 ‘트리니티’. 겉으로는 온갖 허세를 떨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거의 미친 학교다. 학교에 새로운 여학장과 신입생들이 들어오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학교 안은 ‘민들레클럽’이라는 귀족 부유층들의 손아귀 안에 있다. 클럽의 회장인 미소년 도리안(에서 온 건가)은 심심하면 벌거벗은 채 나타나며, 학생·하녀 가리지 않고 씨를 뿌리고 다닌다.
새로 들어온 서민 학생들이 또 하나같이 가관이다. 여주인공인 샬롯은 수석을 놓친 과목의 만점자인 테오를 티파티에 초대하는데, 골수 기독교 친구들이 어두침침하게 앉아 있다(‘덕후’ 캐릭터는 어느 시대, 어느 문화에나 있었던 것 같다). 민들레클럽은 신입생이 들어오는 날 전통의 ‘바보들의 파티’를 여는데, 앵거스와 라이는 자진해서 바보 역을 맡는다. 그러곤 파티에서 자기 얼굴을 알리면 빨리 동정을 뗄 수 있다고 여기고 온몸을 바친다. 쓰레기 수레에 갇혀 오줌 세례를 받으면서도 담배를 나눠 피우며 행복해하는 진짜 바보들이다. 농구 선수 같은 외모의 흑인 테오는 그나마 이성적인 학생. 이 학교가 미쳤다는 걸 금세 알고 짐을 싼다. 그러나 그때 도리안의 사촌인 로잘린이 유혹한다. “너 왕위 계승 서열자하고 해봤어?” 창문을 열고 이 학교에 너무 잘 왔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오해가 있을지 모르지만, 드라마의 축은 미스터리다. 샬롯은 이 학교에 다니다 갑자기 그만둔 아버지의 과거를 밝히고 싶은 궁금증이 있고, 신임 학장은 샬롯의 아버지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애써 부인한다. 학교의 교수진은 어둠 속의 누군가로부터 명령을 받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그 때문에 학생들의 광란과 일탈을 적당히 봐준다. 드라마는 같은 발랄한 분위기에서 점점 어두침침하고 기괴하게 바뀌어갈 것 같다. 그러나 이 귀여운 영국제 미친것들이 만들어내는 발작적인 웃음은 쉽게 그칠 것 같지 않다.
이명석 저술업자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정부 해도 해도 너무한다” 서울 도심 몰려나온 시민들 ‘퇴진’ 구호
‘가을 태풍’ 끄라톤 북상중…다음주 한반도 영향 가능성
‘김건희 의혹’...“국민 분노 어디서 터질지 아무도 몰라” [공덕포차]
공습으로 사망한 나스랄라…정규군 능가하는 헤즈볼라 키워낸 지도자
나스랄라 사망 직후 하메네이 “헤즈볼라 전폭 지원”…파병 가능
대구 도심 무지개빛으로 물들인 퀴어축제 ‘꺾이지 않았다’
딥페이크 처벌법 통과…서지현 “또 자축하는 국회, 정신 차려”
“윤 정부 헛발질에 불안”…청년·대학생 ‘대통령 퇴진’ 촉구
[단독] 윤석열표 ‘새 독립기념관’ 245억 들여 종로에…“이승만 미화 우려”
윤, 박근혜 탄핵시킨 국민 ‘끓는점’ 데자뷔…10월 레임덕 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