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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설에 오른 ‘명가’

등록 2009-12-24 13:55 수정 2020-05-03 04:25
구설에 오른 ‘명가’. 한국방송 제공

구설에 오른 ‘명가’. 한국방송 제공

2009년 방송가에 떠돈 온갖 소문과 뒷담화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새해에 방송될 한국방송 드라마 다. 제작진의 말에 따르면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에 비견할 한국의 명문가 경주 최씨 집안 이야기”라고 한다. 요즘 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경주 최씨 가문을 통해 정당하고 도덕적인 부가 무엇인지 보여줌으로써, 돈으로 득세하는 요즘 세태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 구설은 바로 이 ‘돈’에서 시작됐다. 한 보수 우익 성향의 정치단체가 에 제작 투자를 했다는 소문이 두어 달 전부터 방송가에 떠돌기 시작한 것이다. 법적으로 금지된 일은 아니지만, 특정 정치단체가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는 건 처음이어서 사실이라면 논란이 될 법한 일이었다. 제작자가 아무리 ‘콘텐츠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겠노라 선언해도, 제작진으로선 돈 대는 사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아닌가. 그리하여 방송가에선 가 애초 기획 의도와는 정반대로, 돈만 있으면 누구나 자신의 취향에 맞는 드라마를 제작해 전국에 방송할 정도로 득세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흘러나왔다.

제법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시작된 ‘정치단체 제작비 지원설’이 사그라질 무렵, 또 하나의 소문이 를 덮쳤다. 가 실은 “한국방송이 ‘높으신 분’을 향해 부르는 용비어천가”라는 것이었다. 모름지기 그럴싸한 소문일수록 인물·사건·배경의 3대 요소가 분명한 법. 현 정부가 들어선 뒤 한국방송은 사장 교체를 비롯한 온갖 풍파를 겪었고, 달라진 뉴스 논조 등을 감안할 때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확실히 보여줄 자세가 돼 있다는 게 이 소문의 ‘배경’을 이룬다.

가 등 시청층이 두텁고 권위 있는 1텔레비전 대하사극 방송 시간대에 편성된 것은 ‘사건’이다. 지난해 한국방송은 경영난을 이유로 1텔레비전에서 방송하던 대하사극 을 2텔레비전으로 옮겨 “공영방송이 광고수익만 챙기려 한다”는 거센 반발을 샀다. 그렇다면 한국방송의 재정 상황은 대하사극의 광고수익까지 탐내지 않아도 좋을 만큼 좋아졌다는 것인가, 혹시 광고수익마저 포기하고 를 황금 시간대에 팍팍 밀어준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이 소문의 3대 요소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과연 누구를 위한 용비어천가인가 하는 ‘인물’편에서, 뜻밖의 클라이맥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경주 최씨 중앙종친회장’이었던 것이다. 애쓸 필요도 없이 종친회 홈페이지에 가면 최시중 종친회장의 인사말을 누구나 볼 수 있는 상황이라, 이 소문은 마침내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언론사 뉴스거리로 부상했다.

어쨌거나 는 뜻하지 않은 ‘노이즈 마케팅’에 힘입어, 해도 바뀌기 전에 ‘화제작’이자 ‘문제작’으로 주목받게 됐다. 가 이름을 날리게 될지, 패가망신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이미경 블로거·mad4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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