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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극장’이 문 닫았으면 좋겠다”

등록 2009-12-10 05:13 수정 2020-05-02 19:25
<롤러코스터> ‘막장 극장’. tvN 제공

<롤러코스터> ‘막장 극장’. tvN 제공

올 한 해 방송가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신조어는 ‘막장 드라마’인 듯싶다. 알다시피 상식을 뛰어넘는 자극적인 소재와 비현실적인 설정이 돋보이는 드라마를 통칭하는 말인데, 지상파 3사가 앞다퉈 이런 드라마를 양산하는 통에 막장 드라마가 새로운 ‘장르’로 자리매김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돈다.

막장 드라마를 둘러싼 갑론을박 중 단연 돋보이는 시도는 tvN 의 한 코너인 ‘막장 극장’이다. 온갖 요소를 절묘하게 패러디하고 “전방에 막장 구간이 있습니다”라는 경고음을 넣는 등 코믹한 설정으로 화제를 모은 ‘막장 극장’은 코미디 프로그램인데도 “재미있다”는 평보다 “속 시원하다”는 평을 더 많이 받았다. ‘막장 극장’을 만든 김성덕 감독은 등을 집필하기도 한 ‘한국 시트콤계의 대부’로 불리는 이다. 그는 2009년 불어닥친 ‘막장 드라마 열풍’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 ‘막장 극장’이 한동안 보이지 않는다. 문을 닫은 것인가.

= 막장 드라마가 있는 한 막장 극장도 계속된다. 애초 한 번만 하려 했는데 여러 번 방송한 것도 막장 드라마가 꾸준히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패러디할 대상이 있고 소재가 풍부한데 안 할 이유가 없다.

- ‘막장 극장’을 만들게 된 계기는.

= 드라마 내용은 심각한데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더라. 이렇게 웃기는 드라마라면 코미디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막장 드라마를 코미디 같다고 하는데 사람을 웃기려고 만든 게 코미디고, 어이가 없어서 웃는 건 코미디가 아니다.

- 패러디를 하려면 막장 드라마의 특징을 꼼꼼히 분석했을 텐데.

= 막장성의 핵심은 뻔뻔함이다. 불륜은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지만, 막장 드라마는 수위가 다르다. 조강지처가 보고 있는데 남자가 안방에 내연녀와 태연하게 앉아 있는 상황을 시청자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시청자를 집요하게 자극하기 위해 속도가 빠르고 반전이 수시로 등장한다. 손쉬운 반전을 위해 출생의 비밀이 서너 가지씩 있다. 작가가 캐릭터, 리얼리티,디테일을 무시하고 자극만 추구하면 쓰기는 쉽지만 드라마는 막장이 되는 거다.

- 작가가 문제라는 것인가.

= 구조적인 문제다. 적은 비용으로 쉽고 안전하게 시청률을 올리고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자꾸 만드는 거다. 한 방송사 간부와 밥을 먹는데 “우리도 쪽팔린다”고 하더라. 그래도 시청률이 잘 나오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거다. 욕하면서 보고, 쪽팔리면서 만드는 게 막장 드라마다.

- 2010년에도 막장 드라마 열풍이 계속될까.

= 그러지 않길 바란다. 특히 후배 작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드라마든 시트콤이든 시청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려고 만드는 거 아닌가. 재미가 없어서 시청자가 외면하면, 야단맞고 더 노력하면 된다. 하지만 시청자가 보게끔 하려고 욕 나오는 드라마를 알면서도 쓰는 건 타락하는 길이다. 막장 드라마가 사라져 막장 극장이 문을 닫았으면 하는 게 내 솔직한 바람이다.

이미경 블로거·mad4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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