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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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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미디어법

[오프더레코드]
등록 2009-08-06 11:53 수정 2020-05-03 04:25

올 상반기 최고의 히트작은 단연 였다. 내용이 막장이든 유치하기 짝이 없든 수많은 사람이 그 드라마를 보았고, 더불어 그 드라마에 투자한 한 식품회사의 라면도 보았다. 꽃보다 예쁜 구준표가 시도 때도 없이 라면을 먹으며 감탄하고 칭찬했으니, 그 회사는 투자한 효과를 톡톡히 누렸을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라면스프의 화학성분이나 국물의 과다한 염분, 야식의 해악 등을 이야기할 리는 전혀 없다.

꽃보다 미디어법. 사진 한겨레 자료

꽃보다 미디어법. 사진 한겨레 자료

정부·여당과 어떤 신문들이 미디어법을 대하는 자세도 이와 비슷하다. 국민의 60% 이상이 미디어법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라면이 맛있다’고만 반복해서 말한다. 이 법이 발효되면 미디어산업이 선진화될 것이란다(2만 명의 일자리가 생긴다고도 했지만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오류를 시인했다).

콘텐츠가 다양해짐으로써 미디어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자연히 선진화도 이뤄진다니, 이거 정말 고마운 일이다. 안 그래도 돈만 내면 채널이 100개는 나오는데, 이 정도로는 콘텐츠가 다양하다고 할 수 없나 보다. 얼마 전 SBS의 한 예능 프로그램이 다른 나라의 아이템을 그대로 베꼈던 것도, 케이블에서 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나 드라마가 그토록 선정적이었던 것도 다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보다. 앞으로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면 콘텐츠가 더욱 다양해지고 질도 높아진다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아, 물론 ‘다양한 방송’은 정말 고대하던 바다. 그동안 방송된 뉴스만 보고는 도무지 세상사를 제대로 해석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하철 노조가 파업하면 시민이 어떤 불편을 겪었는지만 지겹게 나오지, 도대체 왜 노조가 파업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화물연대가 운송을 거부하면 우리 경제에 얼마의 타격을 입히는지만 지치도록 나오지, 도대체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처지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미디어법이 통과됐다고 이런 종류의 ‘다양한’ 내용이 등장할 리는 없어 보인다. 법안에 대한 ‘해당 언론사’들의 태도를 보면 누가 기회를 엿보고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앞으로 어떤 논조의 프로그램을 만들지도 빤히 그림이 그려진다.

쌍용자동차는 자동차산업이 어렵다며 구조조정을 하는 형편인데, 방송산업도 만만치 않게 어렵다면서 더 많이 진출하라고 길을 터주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문화방송 는 타 방송사 뉴스보다 시청률이 낮으면 앵커가 교체되던데, 새로 진출하려는 언론사들은 시청률이 얼마면 앵커를 교체할지도 궁금하다.

아니, 사실은 두렵다. 이때 만들어질 에서는 과연 어떤 뉴스를 전하게 될까? 드라마 에서 미실은 말한다. “두려우냐? 그러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도망치거나 분노하거나.”

김현정 블로거·www.mad4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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