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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김 비서’

등록 2010-01-07 18:44 수정 2020-05-03 04:25
김인규 사장. 한겨레 이종찬 기자

김인규 사장. 한겨레 이종찬 기자

새해를 맞으니 문득 떠오르는 일이 있다. 한국방송이 2009년 1월1일 보신각 타종 행사 생중계 때 현장에 나온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이명박은 물러가라” “독재 타도”라고 외치던 음성을 지우는 것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1년 동안 ‘김봉순’ ‘구봉숙’이던 한국방송의 별명은 ‘김 비서’로 바뀌었고, 언론사 신뢰도 조사에서도 오랫동안 지키던 1위 자리를 내줬다.

한국방송의 2010년은 어떨까. 2009년 11월 새로 부임한 김인규 사장(사진)은 2010년에 대규모로 프로그램을 개편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민영방송사들이 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한국방송에서도 시청률을 이유로 똑같이 만들 필요가 없다. 그런 건 폐지하고 대신 다른 방송에서 볼 수 없는 공영방송만의 프로그램을 신규 편성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정말 굉장한 뉴스다. 올해부터 한국방송에서는 시청률을 이유로 제작된 프로그램을 더는 볼 수 없단 말인가! 우선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나 를 문화방송이 방영하면 어떠랴. ‘1박2일’이나 도 시청률 이상의 원대한 목표를 지닌 프로그램이라고 보긴 어렵다. 공영방송사로서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꼽으라면 등이 있겠다. 그런데 이 원대한 포부와는 다르게 그동안 한국방송이 실제로 폐지한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낮은 등이었다.

공영성을 강화하기 위해 주말 밤 10시대에 다큐멘터리를 편성한 것은 눈에 띈다. 같은 취지로 도 부활시켰다는데, 일요일 밤 12시를 넘겨 방송하는 탓에 시청자가 한국방송의 공영성 강화 의지를 눈 똑바로 뜨고 확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공영성의 핵심은 역시 뉴스다. 김인규 사장은 취임식에서 “ 뉴스를 벤치마킹하겠다”고 밝혔다. 지금은 약 90초 분량으로 25~26개 소식을 전달하는 형식인데, 앞으로는 8개 정도의 아이템만 심층적으로 다루겠다는 것이다. 방송가에는 “공영성 하면 보통 영국 를 이야기하는데, 왜 굳이 국회에서 예산 통제를 받고 종종 ‘관영방송’ ‘권언유착 방송’이라는 비난을 받는 뉴스를 언급하느냐”며 진즉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가 많다.

용산 참사 때 강제 진압에 나선 경찰의 주장만을 중점적으로 보도한 것, 이명박 대통령이 재단을 설립해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소식을 무려 네 꼭지로 나눠 크게 다룬 것, 세종시 예정지를 방문한 여당 의원들이 계란 세례 받은 사실을 보도하지 않은 것 등 지난 한 해 ‘김 비서’의 활약은 몹시 도드라졌다. 바르고 공정한 보도로 한국방송이 공영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그만큼 높았다.

한국방송의 비극은 시청자가 말하는 ‘공영성’과 한국방송 경영진이 생각하는 ‘공영성’이 동음이의어라는 점이다. 진상·밉상인 ‘김 비서’가 엄친아 ‘구봉숙’이 되려면 성형수술 정도가 아니라 ‘환생’을 해야 할 판이다.

김현정 블로거·mad4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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