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님들이라면 무척 바쁘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오해’였나 보다. 방송에서 누가 막말을 가장 많이 하는지 열심히 시청하고 통계까지 내준 걸 보면 말이다. 성실한 집계 끝에 1위를 차지한 연예인은 김구라씨. 한 사람의 시청자이자 권력을 쥔 국회의원인 그분은 이런 사태에 대해 “그런 사람은 좀 빼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해당 방송국 이사회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며 명령으로 ‘오해’할 법한 일갈을 남겼다.
바야흐로 온갖 곳에서 심의가 만발하는 시대다. 위에 언급된 방심위가 지난해 5월 꾸려진 뒤 방송계에는 ‘심의’라고 쓰고 ‘검열’이라고 읽을 만한 사태가 반복됐다. 잘 알려진 대로 문화방송 과 , 앵커가 검정색 옷을 입고 뉴스를 진행한 YTN 제작진은 ‘시청자 사과 명령’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문화방송 최대 주주인 방문진은 “이 쌍용자동차 문제에 대해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닌가. 이 프로그램이 반미 성향으로 흐르는 것은 왜 그런가” 하고 물었단다.
이같은 상황을 두고 한 방송사 PD는 “사후 심의를 한다지만 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검열과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자꾸 이러면 말이 나올 만한 아이템은 피하게 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이는 결코 엄살이 아니다. 방송사 사장단이 이사회로 있는 한국방송협회는 시민 성금으로 만든 미디어법 반대 광고에 대해 헌법재판소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심의 보류’ 결정을 내렸다. 방송에 틀지 않겠다는 의지와 다름없는 결정이다. 그런데 정부는 어떻게 ‘방송·통신·신문의 칸막이가 마침내 없어졌다’는 광고를 내보냈단 말인가. 이보다 한 달 전에는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라디오 광고가 심의 보류 사태를 맞았다. 물론 ‘4대강을 지금 살리지 않으면 영원히 못 살릴 것’이란 무시무시한 텔레비전 광고는 오늘도 수없이 방송되고 있다.
방송사는 1차적으로 심의실을 마련해 이곳에서 사전심의를 거친 뒤 방송으로 내보낸다. 모든 방송 프로그램과 뮤직비디오, 노래 가사가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한다. 또 다른 방송계 인사는 “예전엔 심의라고 하면 간접광고나 비속어 사용 때문에 예능과 드라마 PD가 신경을 썼는데 요즘은 시사교양 PD들이 더 많이 신경쓰는 형편이다”라는 말로 바뀐 분위기를 전했다.
방송은 힘이 있으니 견제받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심의가 검열이 되는 순간이다.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 제작진이 중립을 제대로 지켰는지 감시하는 위원님들은 도대체 어떤 정교하고 정당한 ‘자’를 사용해 눈금을 재는지 궁금하다.
경찰이 여성 무릎에 자를 대고 몇cm 이상 올라오면 미니스커트를 입었다며 범죄자 취급을 하던 시대를 향해 추억거리처럼 웃을 수 있는 이유는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위원님이나 국회의원님들도 잘 아실 만한 볼테르의 말을 다시금 상기시켜드리고 싶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말할 권리는 목숨 걸고 지켜주겠다.”
김현정 블로거·www.mad4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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