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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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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으로 사로잡아라

등록 2009-09-08 11:59 수정 2020-05-03 04:25
〈슈퍼스타K〉

〈슈퍼스타K〉

‘악동클럽’ 등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한 번도 ‘슈퍼스타’를 배출한 적이 없다. 미국의 가수 발굴 프로그램 이 1기 우승자인 켈리 클라크슨부터 캐리 언더우드, 크리스 도트리 등 수많은 참가자를 대형 스타로 키워낸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최근 엠넷에서 우승 상금 1억원을 내걸고 야심차게 시작한 가수 발굴 프로그램 가 지상파 방송의 시청률을 위협할 정도로 화제다. 전국에서 가지각색 지원자가 70만 명 넘게 모여들었고, 슈퍼스타 이효리와 잘나가는 기획사 사장 양현석, ‘레전드’급 보컬 이승철이 심사위원이 되면서 스타 탄생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프로그램 형식은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등 외국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적당히 짜깁기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가 참가자들의 특별한 재능과 실력이 아니라, 충격적인 ‘사연’으로 단숨에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는 점이다. 도전자들의 인생사가 어찌나 굴곡지고 특별한지 반년치 방송 분량을 한꺼번에 보는 기분이다. 집을 나와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아버지가 살인자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다는 아들, 아버지의 폭력과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은 딸, 기획사의 말 못할 횡포를 온몸으로 겪은 가수 지망생 등 사연도 구구절절 다양하다.

아픔과 고난을 딛고 인생 역전에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는 희망과 감동을 준다. 참가자들이 오디션에 참가하기 전 겪은 시련이 크면 클수록, 상금 1억원의 값어치와 운명을 바꿀 좁은 길을 터준 프로그램의 위상이 드높아진다. 시청자는 우승자 선정 투표에 참여하면서 그들의 인생 역전에 한몫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폴 포츠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것은 파바로티 뺨치는 노래 실력이 아니라, 휴대전화 외판원으로 살면서 오페라 무대를 넘본 그의 ‘황당한’ 꿈이 현실이 되는 과정에 함께한 시청자의 기쁨과 환희였다. 한국 시청자가 유독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건, 방송가에선 흔한 얘기다. 퀴즈보다 출연자의 입담이 더 중요한 퀴즈쇼, 시트콤처럼 캐릭터와 설정이 있는 리얼리티쇼가 큰 인기를 모으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왕 ‘이야기’를 만들겠다면, 참가자들의 과거가 아니라 그들의 숨은 재능과 실력, 혹은 도전하는 과정에서 부쩍 성장한 그들의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게 어떨까.

도 참가자의 이야기를 소개하지만, 프로그램의 초점은 역시 참가자들 사이의 치열한 대결과 음악적 성장에 맞춰져 있다. 매번 ‘역경 극복 프로젝트’가 반복됐다면, 시즌 8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엄청나고 지속적인 성과를 거두기 힘들었을 것이다.

몇몇 대형 기획사가 기획상품처럼 ‘출시’하는 가수들로 가요계가 좌우되는 현실 속에서 는 모처럼 찾아온 ‘역전의 기회’가 될 수 있을까.

김현정 블로거·www.mad4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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