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행에도 지방도로만 고집하는 남자가 있다. 오래된 가겟집을 발견하면 언제라도 내리기 위해서다. 표적은 국산 양주 미니어처. 길벗 위스키, 불휘, 조우커 등 국내 주류회사에서 생산한 양주를 50~100ml짜리 작은 병에 담은 것이다. 큰 병을 사면 함께 주던 것으로, 예전엔 ‘샘플술’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남자는 ‘국산양주미니어처’란 블로그를 운영하는 풀옵션(36·가명)씨다. 강원도 홍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그가 양주 미니어처의 세계에 뛰어든 것은 2006년 열린 제1회 대한민국주류박람회에 참가한 다음부터다. 다양한 술을 맛볼 수 있다고 해서 원주에서 상경을 감행했다. 목적한 대로 술을 많이 맛보진 못했고, 선착순으로 나눠준 소주 10종 미니어처 세트를 받았다. 이 앙증맞은 병들은 그의 수집 본능에 불을 붙였다.
“같은 브랜드라도 출시 연도에 따라 병 모양, 뚜껑 색깔, 로고가 조금씩 다릅니다. 크게는 가정용, 증정용, 할인매장용이 있고요. 공장이 옮겨간 경우 주소가 다르게 적혀 있기도 하지요.” 라벨에 인쇄된 내용의 차이도 수집 대상이다. 그렇게 모은 미니어처가 양주 1500개, 소주 800개 정도에 이른다. 이사를 하면서 숙원이던 장식장을 짜 미니어처들을 넣었는데, 그것도 모자라 보조장을 샀다. 여러 개 있는 수집품은 분류해 창고에 쌓아두었다.
씨그램진, 길벗 위스키 로우얄, 마패 브랜디, 패스포트, 런던드라이진, 쥬니퍼, 나폴레옹, 불휘, 킹, vip, 베리나인, 조우커, 올드캐슬, 블랙스톤, 로진스키 보드카…. 지금은 대부분 생산이 중단된 이 술들을 수집하기 위해 한가한 날을 잡아 ‘발품’을 판다. 그렇게 3년을 하니 웬만한 지방도는 다 타봤다. 시골 경치를 보며 드라이브를 즐기다 가게가 나오면 들르는 식이다. 가끔 옛날 양주를 찾으면 유통기한 지난 상품을 단속하는 경찰로 오인받기도 한다. 그래서 항상 주머니에 샘플술을 챙겨 다닌다.
요즘은 수집가도 많아지고, 전문업자들도 생겨 공치는 때가 태반이다. 가끔 황금 광맥을 발견하기도 한다. 1년여 전에 들렀던 월정사 아래 가겟집이었다. “그래도 한두 개는 남겨둡니다.” 나중에 찾아올 수집가를 위해 싹쓸이를 하지 않는 게 나름의 도요, 풍류다.
“1970~80년대에 생산된 국산 양주는 사실 몇십 년씩 숙성한 명주도 아니고, 게다가 미니어처는 포장이 야무지지 않아 자체가 가치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이를 토대로 양주 발전사를 연대기순으로 알 수 있지요.”
공부도 열심히 한다. 월간 을 구독하기도 하고, 와 같은 사사나 주류회사에서 발간한 홍보지 등도 모은다.
그는 지금 1993년에 나온 엑스포 기념 세트를 모으고 있다. 꿈돌이·골프채·첨성대 모양을 한 도자기 병에 인삼주, 소주 등이 담겼다. 몇 점 모았지만 세트 완성은 아직이다. 수집의 세계는 넓고, 깊고, 끝이 없다. 그는 아직 술 고프다.
김송은 만화월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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