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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만큼은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인형 옷 만드는 인간
등록 2010-09-01 22:23 수정 2020-05-03 04:26
이진주씨가 직접 제작한 구체관절인형. 대량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이진주 제공

이진주씨가 직접 제작한 구체관절인형. 대량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이진주 제공

“우리 아이가 눈알이 빠졌어요.” 사람 아이는 아니고 인형 이야기다. 인형을 자식처럼 여기는 마니아들 사이에선 자연스러운 대화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인형은 정말 사람처럼 생겼다. 관절 움직임도 사람인 양 자연스럽다. 캐주얼부터 로코코, 고스, 고딕 롤리타 스타일까지 옷도 다양하게 잘 입는다. 옷은 또 얼마나 정교한지 조그만 장식물에 단추·패턴·라인까지 그대로 뻥튀기하면 사람이 입어도 손색이 없다.

인형 옷을 만드는 이진주씨는 조물조물 만드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조소를 전공하고 영화 의상을 만들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벌이가 신통찮았다. 그러던 중 피규어 마니아인 친구를 통해 구체관절인형을 접했다. 도자기 같은 피부에 영롱한 눈망울, 예쁘디예쁜 아이에게 옷을 만들어 입히고 싶은 욕구가 솟았다. 사람 옷을 그대로 축소해서 인형 옷을 만들었다. 주위에서 판매를 권했다. 얼마나 팔리겠나 싶었는데, 잘 팔렸다. 아, 이걸로 벌어서 다시 영화를 해야지. 그게 7년 전이었다.

“10cm 인형부터 박물관에 전시하는 실물 크기 인형 옷까지 다 만들어요. 하다 보니 욕심이 나더라고요. 더 디테일하게, 더 사람 옷처럼 만들고 싶어서 패턴도 그대로 축소하고, 절개선도 다 넣고 집요하게 만들어요.” 집요하게 만드니 완성도가 높아서 찾는 사람이 많았다. 개인 사이트를 만들어 판매하다가 요즘은 인형회사들에서 외주를 받아 작업한다. 개인 작품은 일본 옥션에 내놓는데 경매가가 100만원까지 오르는 경우도 있다. “저는 그냥 인형이 예뻐서 수집하고 옷 만들어 입히는 정도인데, 인형을 많이 좋아하는 사람에겐 자식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자기 옷은 못 사 입어도 인형에겐 고가의 옷을 사 입히기도 해요. 또 다른 자아라고 할 수 있겠죠.”

주위에선 인형놀이를 하면서 돈 버니 부럽다고 하지만, 언제든 영화로 돌아갈 마음이었다. 그런데 3년쯤 만들고 나니 인형놀이의 작은 세계가 마음을 붙잡았다. 명화를 보고 마리 앙투아네트 드레스를 고증해서 옮기기도 하고, 결과물이 빨리 나오니 각종 양식을 재현도 하고 혼합도 해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는 공동작업이잖아요. 지금은 제 것을 만드는 게 좋아요. 죽을 때까지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놀이가 일이라지만 고충도 있다. 작은 걸 만들다 보니 성격이 소심해지는 것 같아 ‘마음은 작아지지 말자’고 써붙여놨다고.

“한번은 2주 동안 안 나가고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인형만 보고 살다가 외출하려고 거울을 봤는데 제가 너무 못생긴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하하.”

얼마 전엔 형상을 만들고 틀을 떠서 직접 구체관절인형을 만들었다. 더 준비해서 대량생산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열심히 연구하고 집요하게 만들고 있으니, 살짝 풀 죽은 표정의 사랑스러운 이 아이가 세상에 나가 작은 위안을 나눠줄 날이 곧 올 것 같다.

김송은 송송책방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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