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더댄스’로 알려진 조경규(36) 작가는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픽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직함이 이리 많으니 엄청 바쁠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그는 지금 가족과 함께 베이징에서 중국음식을 마음껏 먹으며 유유자적 살고 있다.
만화잡지를 만들 때, 나는 그의 만화 의 담당 편집자였다. 중국음식을 좋아하는 고교생들이 동아리를 만들어 서울에 있는 맛있는 중국집을 찾아가 음식을 먹는 내용이었는데, 우리는 취재차(!) 그 중국집들을 일일이 찾아가 맛을 보았다. 다양한 만두들로 시작해 자장, 짬뽕은 물론 찹쌀 탕수육 궈바오러우, 중국식 샤부샤부 훠궈, 북경오리까지…. 참으로 기름지고 풍요로운 나날이었다.
취재 풍경은 이랬다. 많은 음식을 먹어보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동원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우리 팀원, 옆 사무실 직원까지 함께 가 음식을 잔뜩 시킨다. 한두 시간 동안 묵묵히 음식에 열중한다. 오가는 대화는 오직 음식에 대한 것뿐. 식사가 끝나면 식당 문 앞에서 쿨하게 헤어졌다.
그러면서 알게 된 조경규 작가는 음식에 대한 예의와 애정을 갖춘 이였다. 나는 아직까지 그만큼 무한한 열정을 가진 식도락가를 본 적이 없다. 일단 그는 음식에 대한 편견이 거의 없다. 오리 부리나 종아리 같은, 쉬이 먹어본 적 없는 부위에도 금세 적응한다. “오리도 기왕 먹힐 바에야, 알뜰하게 먹히는 게 좋을 거다.” 요리법이나, ‘건강에 나쁘니까’ 따위 걱정은 접어둔다. 맛도 비교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어느 집 만두가 어디보다 맛있더라’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이 집은 이 집대로 저 집은 저 집대로의 맛이 있는 것이지 우열은 없다고 여긴다. 그의 식(食)철학을 요약하면 “한끼 한끼 최선을 다해 먹어야 한다.” 매끼니 진수성찬으로 먹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자장라면을 먹더라도 최선의 요리법을 찾아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대충 때우자”다.
2년 전, 그는 중국의 모 디자인회사로부터 프로젝트 의뢰를 받아 베이징으로 거처를 옮겼다. 4인 가족의 가장으로, 어린아이들까지 데리고 중국에 장기간 살러 간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의 ‘삼엽충론’을 듣고는 당연한 결정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의 역사는 46억 년. 38억 년 전에 생명체가 생겨났고, 5억4천만 년 전쯤 삼엽충이 생겨나 3억 년 정도 지구를 주름잡았다. 인간은 길게 잡아야 10만 년 전쯤 생겨났고, 인간다운 문화가 생겨 지구를 채운 시간은 5천 년 정도다. 인간의 위상이라는 게 그리 대단한 건 아니다.우주의 시각으로 보면 지구의 위상은 또 얼마나 초라한가.”
이쯤 되면 인생이 참 허무하게 느껴지는데, 그렇기 때문에 순간순간이 소중하다는 간단한 진리가 드러난다. 인간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만 그래봐야 몇백 년.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며 사는 것 이상 중요한 건 없다. 중국 갔다 오면 뭐할 건데? 아이들 교육은? 이런 걱정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제대로 맛나는 거 실컷 먹어보자”(베이징의 식당 수는 4만 개가 넘는다)는 본질적인 명제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다. 그에게 ‘삶의 의미’란 고슬고슬 볶아진 볶음밥 위에 떡하니 얹힌 ‘계란프라이’ 같은 거다. 맛 좋고 기분 좋고 단순한 무엇. ‘너와 나의 존재 의미’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송은 송송책방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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