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일기장, 아침밥 반찬, 휘갈겨 쓴 메모… 이런 것들을 그대로 실어줄 잡지가 있을까. “편집자의 형편에 따라 부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저급 잡지”를 표방하는 은 이런 사사로운 것들을 전문으로 담는다. “우리 삶이 사사롭잖아요. 은 삶을 수집하는 잡지입니다.” 편집장이자 발행인 강문식(24)씨의 말이다.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준비하는 틈틈이 을 만들고 있다. 기획, 편집, 디자인, 인쇄 공정까지 혼자 돌본다.
강씨는 군을 제대하고, 산에서 노동해 번 돈으로 유럽 여행을 했다. 우연찮게 여러 아티스트들을 만나 친분을 쌓았다. 권위와 경계가 없는 자유로운 사람들이었다.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 복학하니 학교가 답답했다. 수업만으로는 허기가 채워지지 않아 잡지를 만들기로 했다. 학교에 방을 붙였다. 서로의 삶과 감성을 공유할 사람을 모아 2008년 12월 첫 번째 잡지를 냈다. “인쇄매체는 비교적 싸게 많이 생산할 수 있잖아요. 혼자서 즐기는 그림과 사진들을 널리 배포하고 싶었어요.”
몇 가지 편집 원칙을 정했다. 최대한 손글씨를 그대로 쓸 것. 편집 디자인은 간소하게, 날것 느낌으로. “멋을 잘 못 부려서” 이런 원칙을 세웠다지만, 찬찬히 보면 제대로 계산된 전략이다. “정은아 벌스 네 나이가 50두 살이다 건방 60 되고 70 되고 80 됀다 정은아 마음을 비우고 점께 살아라 정은아 얼구레 주룸살 안 지게 마음을 비우라” 같은 할머니의 편지가 주는 느낌을 어떤 타이포가 제대로 살릴 수 있겠는가.
은 지금까지 두 바퀴 반을 돌았다. 첫 바퀴(1호)의 주제는 일기장. 개인의 일기들을 모아 엮었다. 한 바퀴 반(1.5호)은 강씨 자신의 병영일기다. ‘이것은 2년간, 나의 유배일기’란 제목을 달고 일기와 그림, 초소 일지 등을 담았다. “2006년 10월10일. 초번 보초를 나갔다. 아침을 먹고 밥통을 닦았다. 도색 밑작업을 했다. 보초를 나갔다. 밥을 먹었다. 양말을 빨았다. 보초를 나갔다. 총을 닦았다. 씻고 점호를 받았다. 무릎이 무디다. 즐거운 보초 하루 끝.”
두 바퀴 반(2.5호)의 주제는 아침밥이다. 다섯 명이 참여해서 아침 밥상에 올라온 콩자반, 깍두기, 가지나물 같은 반찬에 대한 단상을 적었다. “나는 김이 없으면 밥이 먹기 싫어. 그래서 할머니가 나 모르게 매일 사다놓는다. 이걸 쓰면서 눈물이 난다. 할머니가 죽으면 김 보면서 많이 울 것 같다.” 매일 먹는 김이지만 감상이 남다르다. “문식아 밥통에 밥 있다. 순두부찌개에 데워먹으렴.” 냉장고에 붙어 있었을 어머니의 메모에 날짜를 붙여 그대로 담았다. 2009년 9월26일 강씨는 순두부찌개를 먹었을 것이다. 다른 날도 어디에 뭐 있으니 데워먹으라는 내용이다. 가끔 후식을 챙기기도 하고, 아주 가끔 “사랑해”라고도 한다. 이날은 어머니가 뭔가 미안한 일이 있으셨을지 모르겠다. 밥을 매개로 취향과 가족과 감정과 관계가 드러난다. 그때, 거기, 그들의 특수함이 그걸 공감하는 우리의 보편으로 확장된다.
첫 호는 1천 부, 그 다음호는 페이지가 늘어 500부를 찍었는데 아직 많이 남았다. 작은 서점과 몇몇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하는데, 홍보나 입점, 재고와 매출 관리에 재주가 없어 그냥 방치하는 상태다. 이런 걸 잘하는 여자친구가 절실하다고 한다(지원자는 mkanalog@gmail.com 또는 club.cyworld.com/pygdmgn로).
김송은 송송책방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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