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프라이 노른자를 언제 터뜨릴까 항상 고민되지. 래퍼들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하나같이 카메라에 들이대지… 개의 용변을 치우지 마시오.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아, 혹시… 내가 1등인가?’ 마라토너는 달릴 때 무슨 생각을 할까, 을 그린 개그만화가 오히나타 고의 답이다.
그게 그냥 개그만은 아닌 모양이다. “두서없이 이 생각 저 생각 해요. 마누라한테 못했던 거, 친구한테 술 얻어먹고 안 갚은 거….” 이상하게 그간 잘못했던 일을 반성하게 된다는 마라토너 한택규(57)씨. 서울 마포구 공덕동 로터리에서 작은 인쇄소를 운영하는 그는 명함이 두 개다. 하나는 사업용, 하나는 마라톤 풀코스를 100회 이상 완주한 마라토너임을 보여주는 명함이다. ‘마라톤 마니아’라 적힌 명함 뒷면에는 그동안 출전한 마라톤 대회와 완주 횟수가 적혀 있다. 100km를 뛰는 울트라마라톤 5회, 풀코스 30회, 하프마라톤 73회, 63빌딩 계단달려오르기 1회 등 무수한 대회 완주 경력이 빼곡하다. 매년 전국에서 500개 정도 대회가 열리는데, 가리지 않고 출전한다. 그중엔 웃통 벗고 달리는 ‘알몸마라톤’ 대회도 있다. 현수막부터 도장, 열쇠까지 제작하는 그의 가게 안에는 마라토너의 작업장답게 마라톤 완주 메달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달리다 보면 그때그때 갖고 있는 문제들이 떠올라요. 딸들이 한꺼번에 대학을 다녀서 등록금 내랴, 생활하랴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도 뛰다 보면 답이 나오고 용기가 생겼어요. 달리는 건 힘들어요. 10km든 100km든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이런저런 생각으로 자기성찰을 하게 돼요. 그래서 마라톤 하는 사람 중엔 나쁜 사람이 없어요.”
마라톤·마라토너 예찬론을 펼치는 그는 4대째 마포에 살고 있는 마포 토박이다. 원래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어릴 때는 한강에서 수영을 했고, 청소년기엔 복싱을 했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것은 9년 전, 크고 작은 대회에 140회 이상 참가해 모두 완주했다.
“달리기는 가장 정직한 운동이에요. 평소 운동을 게을리하면 끝까지 뛰기 힘들죠. 또 단체경기와는 달리 반칙이란 게 존재할 수 없어요. 성실하게 한발 한발 가야 하니까요. 몇천 명이 같이 달려도 결국 자기 혼자만의 경기입니다. 달리다 그만둬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지만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뛰는 거죠. 그래도 완주했을 때의 성취감은 최고예요.”
달리기의 효용은 성취감과 자기성찰만이 아니다. 그는 50대 후반인데 40대처럼 보인다. “그런 말 많이 들어요. 동네 불알친구들 모임에 가면 다른 친구들이 ‘야 이 ×눔 새끼야, 너 나오지 마’ 그래요. 머리 벗어지고 주름 자글자글한 녀석들에 비해 제가 젊어 보이니까 여자친구들이 제 주변에 몰리거든요. 하하.”
지방 대회까지 참가하려면 왕복 차비에 참가비에 숙박비에 경비가 만만치 않지만 대회를 앞두고는 술을 마시지 않으니 ‘똔똔’이라고.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부산 해안도로로 기장까지 뛰었던 100km 울트라마라톤이다. 부산 해안도로를 밤새 달려 해 뜨는 걸 보았다.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는 깜깜한 국도를 두려움과 싸우며 힘들게 달려 골인했다. “그 희열은 말로 못하죠.”
요즘은 딸들이 걱정을 많이 한다. 그만큼 뛰었으면 많이 했으니 이제 그만하라고. 그래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70대까지 뛸 생각이다. “뛰면 몸과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모두 달리기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김송은 송송책방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