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내 제주도에 갔다. 3박4일간 비가 내렸다. 차만 타고 돌아다녔다. 멀리 보이는 바다는 뿌옇고, 한라산은 보이지도 않았다. 앞 유리에 떨어지는 빗줄기랑 와이퍼만 실컷 보다 돌아가는 것인가, 아아. 그러다 지나게 된 제주도 남쪽 대평리. 오랜만에 차에서 내리니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올레길 8코스가 지나는, 바다로 면한 동네 길가를 따라 늘어선 바위 위에 돌들이 기기묘묘한 형상으로 층층이 쌓여 있다. 쌓기 좋은 넓적한 돌이 아니라 삐죽삐죽한 바닷돌을 세우기도 하고 눕히기도 하며 다양한 형상을 만들어낸다. 간간이 우르르 무너져 있는 돌들도 있는 걸 보면 시멘트로 붙여놓은 건 아닌데.
동네 사람에게 수소문하니 이 작품들의 주인공은 바당뜰 펜션을 운영하는 김덕립 사장. 올레길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 지난해 봄부터 “땅만 보고 걸으면 심심할 테니 지나가면서 보라고” 올레꾼들을 위해 돌을 쌓기 시작했다.
돌을 어떻게 쌓았는지 물으니 “이거 누구나 다 하는 거예요” 한다. 아무 돌이나 집어들어 바위 위에서 몇 번 위치를 잡더니 척 세운다. “중심만 찾으면 그냥 서요.” 하나만 서 있어도 아슬아슬해 보이는 돌 위에 돌멩이 하나를 또 올린다. 인위적으로 깨거나 붙이지 않아도 생긴 모양 그대로 중심 잡고 서 있는 돌들 뒤로 바다가 망망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기해서 만져보고 쓰러지면 다시 못 세우니까 우르르 무너뜨리고 가기도 해요. 속상하지 않으냐고요? 그러면 또 쌓으면 되지요.” 또 돌을 집어들어 척척 세운다.
조형물을 만드는 데 무슨 기준이 있을까? “그냥 쌓아요. (새처럼 생긴 돌을 가리키며) 이런 건 새 같잖아요. 보다가 지겨우면 이걸 또 뒤집어서 얹어봐요. 그럼 또 다른 느낌이 들죠.” 새를 척 뒤집어 얹으니 사람의 간 모양이 나온다.
대평리에서 태어나 농사도 짓고 고기도 잡다가 6년 전 펜션을 지었다는 그는 오전엔 청소하고 오후엔 낚시도 다니고 고기 잡아서 소주도 한잔하면서 지낸단다. 돌 쌓는 법을 자꾸 물어보니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인데 그런다면서 문어 잡으러 가야 한다고 나섰다. 장마철엔 바닷물이 빠지고 나면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문어가 뻘에 널려 있어 “그냥 주워오면” 된다고 한다.
관광객에게 덜 알려진 옆 마을로 향하면서 자꾸 질문을 쏟아내는 내게 대나무 낚시를 권했다. “그냥 담그면 고기가 낚여요. 재밌으니까 해봐요.” 인심 좋게 일행들 것까지 낚싯대를 챙겨주고 돌아서는 김덕립 사장. 바다가 있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고, 그 사이에 중심을 잡고 자기 모습 그대로 즐기며 노는 고수의 포스가 함께하고 있었다.
김송은 송송책방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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