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유혹〉
난 드라마 보기를 좋아한다. 남자들이 TV에서 보는 건 스포츠나 뉴스뿐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드라마를 좋아하는 남자들도 상당히 많다. 내가 보수적이어선지 실험정신이 가득한 드라마는 별로 좋아하지 않고 눈물이 철철 흐르거나 남녀간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있거나 엎어지게 웃을 수 있는, 굉장히 통속적인 극을 좋아한다. 얼마 전 중국에 출장갔다가 길거리에서 파는 와 복제 DVD를 사와 집에서 봤더니 아내가 일본 아줌마라고 놀려대기도 했다. 남자가 드라마를 좋아하면 좀 한심해 보인다는 말도 더하면서.
몇 해 전부터 ‘막장 드라마’라는 꼬리표를 단 드라마가 속속 나오고 있다. 드라마를 무척 좋아하는 나로서도 막장이라 일컫는 드라마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드라마의 소재에 있지 않다(소재 때문에 막장 드라마라고 칭한다면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인 로라 부시가 열광했던 미국 드라마 은 막장 중에 상막장 아닌가). 느닷없이 전개되는 극의 무리한 구성이 좀처럼 쉽게 드라마에 빠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제까지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던 남녀가 느닷없이 오늘부터 열렬히 사랑한다든지, 알고 보니 친딸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실소가 나오는 부분이다.
근데 우리 어머니의 경우엔 다르다. “아이고, 저 나쁜 ×.” 이렇게 욕을 하면서 굉장히 몰입하고 재밌어한다. 노년의 어머니가 유일하게 TV에서 보는 것이라곤 그 드라마뿐인데 그나마 재밌게 보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그 드라마가 감사하기까지 하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막장 드라마와 막말 방송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이전 정부에서는 별 얘기 없던 일을 정부가 바뀌자 새삼 나서서 한다는 것이다. 과연 방심위는 무엇을 보고 막장 드라마라고 할지 궁금하다. 불륜이면 막장인가? 가족관계가 복잡하면 막장인가? 주인공이 죽으면 막장인가? 국가가 나서 친히 예능 출연자의 언어를 순화하려 하고 드라마의 소재와 극의 구성을 지도하려 하지 않아도 시청자는 다 알아서 한다. 보기 싫은 사람과 볼 사람이 나뉘면 시청률 추이에 따라 시간과 구성이 조정된다. 보는 사람에겐 선택의 자유만 있으면 된다. 나에겐 막장일지 몰라도 우리 어머니에겐 아니듯, 방심위엔 막장일지 몰라도 나에겐 아닐 수 있다. 어느 누가 남의 창작물에 막장이란 꼬리표를 붙여 멋대로 제재할 수 있단 말인가. 국가나 자식들이 해드리지 못한 유일한 어머니의 즐거움. 막장 드라마를 좀 내버려둬라.
윤운식 기자 blog.hani.co.kr/ywsh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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