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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책]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죽은 채로 산 아이가 어느 날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뒤…죽음에 대한 단도직입의 질문
등록 2009-10-28 17:39 수정 2020-05-03 04:25
[전문가가 권하는 청소년 책 18]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이경혜 지음, 송영미 그림, 바람의아이들 펴냄, 2004년 4월 출간, 9천원, ‘반올림’ 시리즈 1

열여섯 싱싱한 사내아이 하나가 죽었다. 밤길에 오토바이를 몰다 가로수에 부딪쳐 즉사했다. 너무나 좋아하는 여자애, 잘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난 여자애가 있었고, 오토바이 타는 남자가 멋있어 보이더라는 그 애의 말에 덜컥 오토바이에 오르기는 했지만, 경솔한 것은 아니었다. 그 애는 그냥 죽은 것이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하고 그 애는, 자기와 가장 친한 친구가 선물한 일기장 첫머리에 쓴다. 그 애는 자기가 죽었다고 가정하고 세상을 살아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내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달라 보일까?” 해서다. 그래놓고 계속 죽은 자로 살다가 그 애는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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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을 선물한 친구인 화자 유미가 읽는 일기장의 구절들과 회상하는 친구와의 추억, 살아가는 나날들이 엇갈려 나오면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이 이야기는, 단도직입적으로 죽음의 의미를 묻는다. 죽음의 의미를 화자는 모른다고 하지만, 깨닫는 건 있다. “누군가 태어났다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 그것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 그리고 그 죽음이 지극히 어이없고 하찮은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열여섯 아이가 죽음의 돌발성, 인생의 허무함을 그토록 몸으로 체험하는 게 가슴 아프지만 대견하다. 자신은 영원히 위대하게 살 것만 같은 불타는 욕망과 자부심에 사로잡혀 세상의 산소를 맹렬히 연소시키는 사람들로 들끓는, 숨이 턱턱 막히는 세상에서 숨통을 틔워주는 바람이 되고 빗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가 많아지는 세상, 그런 아이를 그리는 책이 많아지는 세상. 생각만 해도 시원해진다.

김서정 동화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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