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7호 클럽’.
좀 민망한 이름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이름 붙이고 시시덕거렸다. 2005년 9월부터 2006년 8월까지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웠을 시기인 중국 어학연수 기간에 우리가 운영(?)했던 클럽 이름이다. 507호는 내가 묵던 기숙사 방의 호수였다.
말은 거창하지만, 실상은 밤에 할 일 없고 혼자 놀거나 술 마시지 않고도 잘 노는 사람 몇몇이 모여 즉석에서 만들어낸 클럽이다. 준비할 물품도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신나는 댄스곡이 든 CD 몇 장과 수건이면 족하다. 우선 TV 스피커에 연결되는 CD플레이어로 음악을 튼다. 다음 수건으로 TV 화면을 덮기만 하면 된다. 클럽다운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다.
물론 참여 멤버도 중요하다. 김아무개(29) 언니는 507호 클럽 창립 멤버다. 멀쩡하게 잘 다니던 직장이 있었고, 영어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데도, 기어코 중국어를 해보고 싶다며 회사를 때려치우고 온 그다. 그와 친해지기 전 평소에는 공부만 할 것 같은 서로의 이미지(?) 때문에 거리가 있었지만, 507호 클럽을 다녀간 뒤 더없이 친해졌다. 서로 발동 걸리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원없이- 엄청나게 추운 베이징의 한겨울에 땀이 날 정도로- 춤을 춰댔으니…. 이 밖에 처음엔 ‘중국 생활 5년 만에 이런 사람들은 처음 봤다’는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봤지만 결국 단골손님이 된 김아무개(25)와, 춤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기막힌 통아저씨 춤으로 큰 웃음을 줬던 도아무개(29)까지.
이웃 유학생들의 민원에 ‘507호 클럽’은 자체 영업 중지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지나치게 큰 음악 소리 때문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큰 우리의 웃음소리 때문이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자체 영업 중지는 단 10분에 불과했다. 비밀 영업을 하듯 우리는 또다시 음악을 틀어놓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아가며 춤을 췄다. 레퍼토리는 꽃미남 영국 그룹 블루의 (One Love)부터 린킨파크의 (Faint)까지 다양했다. 불법 복제돼 팔리던 한국 가요 프로그램 CD를 구해 당시 한국에서 유행하던 장우혁이나 보아의 춤과 음악에 빠져들기도 했다. 딱히 보여줄 사람도 없는데, 우리는 안 되는 부분은 뒤로 돌려가며 춤을 익혔다. 정말 이유 없이.
단골 손님이던 김아무개 언니의 육성 증언. “정연씨, 그때가 못 견디게 생각날 때가 있어요. 정말 즐거웠는데, 꼭 꿈꾼 것처럼 떠오를 때가 있어.” 흐뭇할 뿐이다. ‘507호 클럽’을 그리워하는 그와 이제는 서울 홍익대 앞에서 만나 술잔을 기울이다가 발동이 걸리면 함께 클럽까지 진출한다.
손님은 없지만 내 방도 종종 클럽으로 바뀌곤 한다. 동영상을 보면서 유명 가수들의 댄스를 따라하기도 하고, 음악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방방 뛰기도 한다. ‘507호 클럽’ 문 닫은 지가 어언 4년, ‘507호 클럽 한국점’을 내볼까 하는 생각에 다시 엉덩이가 들썩인다.
이정연 기자 한겨레 경제부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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