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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지 않나, 내가 변하자


영화 <거짓말>에 공감하며 술친구가 된 장선우 감독, 예술가로서 그만큼 반복을 싫어한 사람이 있을까
등록 2009-09-29 15:14 수정 2020-05-03 04:25
지겹지 않나, 내가 변하자/장선우 감독. 일러스트레이션 임범

지겹지 않나, 내가 변하자/장선우 감독. 일러스트레이션 임범

“세상이 지겹게 안 변하는 데엔 이유가 있을 거다. 내가 변하자.”

그 말에 꽂혀서 시작된 인연이 만 10년이 됐다. 1999년 내가 에서 영화 담당 기자를 할 때였다. 장선우 감독과 박광수 감독의 대담에서 장 감독이 그 말을 했다. ‘지겹게’라는 부사가 더없이 실감났다. 그때 내가 그랬다. 한국에서 90년대 10년을 지내면서 절망 내지 냉소를 갖지 않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세상이 이토록 안 변하는데 지겹지 않으면 이상한 것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을 지겨워하면 청산주의자로 보거나 한량 취급한다. 내게 장 감독의 말은 이렇게 들리기도 했다. 세상이 안 변하는 걸 지겹게,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족속들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렇다! 같은 족속이구나! 같은 족속의 선배구나! (그는 나보다 열 살 많다.) 일종의 커밍아웃? 스스로 뱀파이어인 줄 모르던 이가 선배 뱀파이어를 만나 자신을 알게 되는 것? (그는 뱀파이어처럼 송곳니가 나왔다.)

몇 달 뒤 장 감독의 영화 이 완성돼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일반극장 상영 불가 판정을 받았다. 나는 에서 세상을 지겨워하는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봤고, 그 사랑은 더없이 슬펐다. 상영 불가 이유는, 영화 속의 가학·피학적 행위였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트집이었다. 세상을 지겨워하는 ‘뱀파이어’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게 싫었던 거다. 이 가위질당한 채, 이창동 감독의 과 동시에 개봉할 때 ‘=좋은 나라, =나쁜 나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때 장선우, 이창동의 대담을 마련했다. 역시 이창동 감독은 달랐다. 의 속 깊은 슬픔에 공감했고, 가식 없는 어법의 용기에 존경심을 표했다. 그 대담을 전후해 장 감독과의 술자리가 잦아졌고 나이와 명성의 큰 차이에도 나는 ‘뱀파이어 선배’와 술친구가 됐다. 성공적인 커밍아웃!

장 감독과 술 마시면서 가장 인상적인 건 말투였다. 말은 정확하게 하는데, 어미를 ‘다’로 안 끝내고 ‘어’로 끝낸다. 억양도 독특하다. 어린아이가 뭔가를 보채며 말하는 것 같다. 거기엔 에누리가 있다. 상대방과 얘기를 나눌 여지를 열어놓는다. 권위라고는 없다. 일부러 그런 말투를 연습했다는 얘기를 누구에겐가 들었는데 장 감독에게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가 술꾼의 제일 덕목으로 여기는 태도, 혼자 말 많이 하지 않는 것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어서 그와 마시다 보면 열 살 나이 차이를 곧잘 잊어버리게 된다.

말 많았던 의 개봉과 흥행 참패가 있었고, 몽골에서 크랭크인했던 이 엎어지고 2005년 장 감독이 제주도로 내려간 뒤 몇 달 지나 제주도에 갔다. 바닷가의 조그만 집이었고, 마당에 텃밭이 있었다. 장 감독은 가꿨다고 했는데, 부인 이혜영은 절로 자란 거라고 했다. 난방은 나무를 때서 했다. 검소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집에서 술 한잔 하는데 옆집 아저씨가 지금 막 잡았다며 문어 한 마리를 던져주고 간다. 놀러나가면서 장 감독이 동네 꼬마에게 “우리 소풍 간다”고 하자 꼬마가 “또 뻥치네” 한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긴 장화를 신지 않는데 장 감독은 자주 긴 장화를 신었다. 이혜영에게 들으니, 제주도 올 때 제일 먼저 산 게 장화였단다. ‘역시 여전히 폼을 챙기는구나.’

그 뒤로 1년에 서너 번씩 제주도에 갔다. 장 감독은 싸고 맛있는 집들을 잘 알고 있었다. 대평포구에 노부부가 하는 조그만 횟집에서 돌돔회를 콩잎에 싸먹었을 때의 그 맛이란. 꿀꺽. 그런 자유로움에도 난 장 감독이 시골 생활에 몸이 근질근질해서 곧 올라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4년이 넘었다. 눌러앉으려는지 지난해엔 제주도 대평에 ‘물고기’라는 카페를 차렸다. 이 카페는 명소가 돼 사람이 들끓는다.

밀란 쿤데라는, 인류의 역사는 반복하는 악취미를 가진 반면 예술의 역사는 반복을 용인하지 않는다고 했다. 반복은 부끄러움을 모를 때 하는 거라고도 했다. 난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장 감독이 생각난다. 10년 전에 그는 ‘지겹게’라는 표현을 썼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반복하는 역사가 지겹다는 말이었을 거다. 아울러 예술가로서 그만큼 반복을 싫어했던 이가 있을까. 장 감독이 2년 전부터 쓰기 시작한 붓다의 일대기 시나리오 초고를 읽었을 때, 거기엔 장 감독 영화에서 곧잘 보였던 애잔함이 있었다. 붓다 이야기가 애잔해도 되는 건가? 지금도 짬짬이 고친다고 들었다. 그럼 애잔하지 않으면 그게 장선우 작품일까 싶은데, 장 감독은 앞에 말한 “내가 변하자”를 밀고 가고 있는 것 같다.

임범 애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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