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찢기의 꿈이 현실로.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4개월 전 어느 일요일 저녁 7시30분. 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가파른 언덕길을 헉헉거리며 올랐다. ‘축, 재개발 촉진지구 조합위원회 설립’이라는 현수막이 골목길 곳곳에 나붙어 있었다. 좁은 골목길 사이를 비집고 찾아간 다세대주택의 반지하방. 그 방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할 즈음, 우리는 모두 모였다. 그곳은 다름 아닌 우리의 발레교습소.
발레교습소는 ‘발레’와는 왠지 거리가 먼 모양새였다. 채 빠지지 않은 꿉꿉한 땀 냄새가 가득했다. 한쪽 벽을 가득 채워 둘러쳐진 거울들과 균형을 잡는 데 쓰이는 바(bar)만이 이곳이 춤추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임을 알려줄 뿐이다. 곳곳에서 힘을 주면 삐걱거리는 나무바닥, 그러나 내가 가장 돌아오고 싶었던 곳이었다.
오랜 소망이었던 발레 교습을 받을 기회를 얻게 된 것은 지난 3월이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무용 전공자에게 “내게 발레를 가르쳐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그 계획이 순식간에 행동으로 옮겨졌다. 열망과 바람이 있는 사람에게 미적거림은 시간 낭비일 뿐. 나와 회사 동료, 무용을 전공하지 않은 대학생 두 명, 이렇게 넷이 모여 우리의 첫 레슨이 시작됐다. 예쁜 분홍 발레 연습복이나 발레 슈즈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처음 무용을 배웠을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말이 몸풀기지 그 어떤 운동보다도 힘든 워밍업을 1시간 하고 나니 다들 녹초가 됐다. 중간중간 유연성을 기른다며 양다리를 잡고 다리를 쭈~욱 바깥으로 밀어내는 선생님이 정말 악마처럼 보일 때도 있었지만, 싫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점점 다시 꿈에 다가서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행복했다.
‘포기할 수 없어.’ 12년 전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나는 밤마다 이 말을 되뇌곤 했다. 춤추는 것을 도저히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끊임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예술고등학교를 가보면 어떨까?’ 하고 희망사항을 머릿속에 펼치곤 했던 나는 밤마다 이부자리를 펴놓고 언제든 무용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몸을 준비해둬야 한다며 홀로 ‘다리찢기’에 열중하곤 했다. 누워서 할 수 있는 스트레칭은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하지만 결국 일반 고등학교를 들어갔고, 꿈은 멀리 떠나가는 듯했다. 여전히 꿈을 포기하지 못한 나는 부모님이 주신 참고서비를 들고 시내로 나갔다. 시내의 지하상가에 있는 작은 무용용품 상점. 아무리 봐도 무용 전공과는 거리가 있어보이는 학생이 대뜸 “발레 토슈즈(발끝으로 설 수 있게 만든 발레 전용 신발) 240㎜ 하나 주세요”라고 하니, 주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브랜드로 줄까?” 브랜드를 알 리 없던 나는 “그냥 제일 싼 거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 발레 슈즈를 품에 안고 다짐했다. 꼭 신고 말겠다고.
아마 빛나는 토슈즈를 신고 무대에 오를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포기할 수 없어’라고 되뇌던 나는 포기하지 않고 춤추고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것뿐이다.
이정연 기자 한겨레 경제부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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