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30분.
그가 묻는다. “자기, 뭐하니?”
나는 대답한다. “그냥 쉬고 있어. 갈까?”
30분 뒤, 그와 나는 홍익대 앞 놀이터에서 접선한다. 접선 직후 우리는 행선지를 물을 필요 없이 그곳으로 간다. 그는 나의 십년지기 ‘클럽메이트’다.
외로워도, 슬퍼도, 즐거워도, 심심해도 춤추고 싶어하는 영혼 둘이다. 이제 인생의 3분의 1을 함께한 친구다. 아마 함께한 시간 중에 3분의 1은 춤을 추는 시간이었을 테다.
사실 클럽에 가기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춤을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클럽 한번 가자고 졸라대던 친구들은 클럽에 들어서자마자 각자 ‘작업’에 바쁘다. 별반 신경쓰지 않지만, 내가 혼자 떨어져 춤을 추고 있으면 또 그들은 “너 혼자 뭐해, 같이 놀자”고 한다. 물론 ‘작업’이 실패했을 때의 얘기다.
클럽메이트와는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다. 둘이 함께 갔지만 따로 춤추고, 또 따로 놀다가도 어느새 함께 폴짝대면서 마주 보고 웃고 있으니까.
7년 전이었을 테다. 아직 그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 하루하루가 바닷속 밑바닥을 기어다니는 것처럼 힘들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어려운 일들이 닥쳤다. 겪고 보니 20대에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지만 누구나 겪었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사람도, 음악도, 좋아하던 춤도 나를 그 고통에서 꺼내주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방 안에 혼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하지만 그는 다 안다는 듯이 내 손을 잡고 춤을 추러 가자고 했다. 언제나 그렇듯 이유 없이 간 클럽이었지만, 나에게는 눈물이 날 만큼 고맙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고맙다는 이야기는 아직 하지 못했다.
올해 초, 이번엔 그에게 힘든 일이 닥쳤다. 청천벽력 같은, 그 이상 설명할 길이 없는 일이었다. 이번엔 내가 손을 내밀 차례였다. 그가 몸과 마음을 조금씩 추슬러갈 무렵 우리는 다시 홍익대 앞에서 만났다. 나 역시 말없이 그의 손을 잡고 춤을 추러 가자고 할 뿐이었다.
그와 함께라면 춤추는 것은 어디서든 오케이. 함께 간 중국 베이징의 클럽에서도, 한강 주변의 공원 잔디밭에서도 어디든 좋았다. 중국의 영토만큼이나 넓디넓었던 베이징의 한 클럽에서 보았던 불쇼부터, 신발을 벗어던지고 마주 보며 춤을 추던 모습까지 영영 기억될 추억이 벌써 한가득이다.
흔히들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知音)이라 한다. 나에게는 ‘지무’(知舞)가 있다. 우리에게 춤은 어떤 말보다도 서로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표시다.
9월26일, 서울 한강의 한 공원에 세계 곳곳에서 온 유명 DJ들이 모인다. 그는 일찌감치 “당신의 26일은 나의 것”이란다. 가을 한복판 잔디밭에서 나와 그는 다시 한번 신발을 벗어던지고 달빛이 비칠 때까지 춤을 출 것이다.
이정연 기자 한겨레 경제부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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