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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21] 한 명 더 태웠을 뿐인데…

등록 2009-09-16 14:56 수정 2020-05-03 04:25
한 명 더 태웠을 뿐인데… 사진 한겨레 자료

한 명 더 태웠을 뿐인데… 사진 한겨레 자료

(지난호에서 이어짐) 누군가 나한테 해준 말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자유방임에 맡겨놓는 것 같지만 ‘룰’을 지키지 않으면 큰코다치는 나라가 또한 영국이다. (영국에서는) 한번 걸리면 작살난다.”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10일 안에 납부하면 절반인 60파운드(약 12만원)만 내면 된다는 안내가 덧붙여져 있었다.

하지만 60파운드를 그냥 다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날 저녁, 내가 살고 있던 도시 카디프로 돌아와 인터넷을 뒤졌다. 런던을 관할하는 웨스트민스터시 교통당국 홈페이지는 아니지만, 영국의 다른 교통당국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아침에는 주차 금지 개시 이후 5분간은 단속을 하지 않고 시간 여유를 준다고 적혀 있었다.

당장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웨스트민스터시 당국자께…” 어쩌고로 시작되는 장문의 편지 끝에 “위의 사정을 고려해 벌금을 취소해달라”고 정중히 요청했다. ‘고려할 사정’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아침 주차 금지 개시 5분 이내에는 스티커를 안 끊는 규정이 있는 것으로 안다. 둘째, 단 3분 차이로 스티커가 발부됐다. 셋째, 영국에 온 지 며칠 안 돼 잘 몰랐다(영국 입국 날짜가 찍힌 여권 복사본 첨부). 넷째, 나는 그 도로상에 있는 호텔의 투숙객이었다(숙박 증빙서류 첨부).

일주일 만에 답장이 왔다. 두 줄짜리 짤막한 답변이었다. “당신 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벌금은 정당하게 부과됐다. 너의 요청은 거절됐다.” 전통적인 ‘자유방임’의 나라 영국. 그러나 한번 잘못 걸리면 작살난다!

한 가지 덧붙인다. 영국에 사는 어느 한국인이 직접 겪은 일화다.

어느 날 5인승 승용차에 6명을 태우고 시 외곽 일반도로를 달리다 경찰에 적발됐다. 탑승 인원 초과가 발각된 것. “잘 몰랐다, 한번 봐달라.” 그 역시 한국인이 애용하는 ‘통사정’ 멘트를 날렸다. 역시 때로는 통하기도 하니까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애용하는가 보다. 사람 좋아 뵈는 그 영국 경찰관은 꺼냈던 벌금 딱지를 도로 윗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거 봐라? 같은 한국 사람인데 누구는 봐주고….

그런데 운 좋았다고 생각한 건 잠시뿐이었다. “탑승 초과 인원 1명은 지금 당장 차에서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는 차로이니 차를 세워둘 순 없고, 어서 계속 주행하세요.” 한 명을 길가에 내려놓고 차는 떠나라?! 어이가 없었지만, ‘조금 더 가다가 돌아와 다시 태우면 되겠지’ 생각하고 액셀을 밟았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계속 차를 몰았는데, 그 순찰차가 10마일(16km)가량을 따라붙었다고 한다. 영국의 경찰관이 할 일은 안전운전을 도와 교통사고를 방지하는 것이고, 딱지 끊어 벌금을 물리는 건 본업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벌금도 벌금이지만, 영국에서 탑승 인원 초과는 절대로 하지 마라. 걸렸다 하면 벌금보다 더한 고생을 하게 된다.” 운전을 시작할 때, 영국에 사는 한국 사람마다 한마디씩 던지는 말이다.

조계완 기자 blog.hani.co.kr/kye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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