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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약 있어요?

등록 2009-08-21 17:26 수정 2020-05-03 04:25
심야생태보고서. 사진 이정연

심야생태보고서. 사진 이정연

“저기, 약 있어요?”

“예? 뭐라고요?”

“아, 약 몇 알 안 팔래요?”

2004년 한여름 서울 홍익대 앞 클럽에서 춤을 추고 있던 나에게 어떤 남자가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부비부비’를 하려나 보다 하고 무시하려 했지만 영어를 섞어가며 뭔가 지껄이지 않는가. 촌스러워 보일 정도로 왁스를 한껏 발라 젖힌 그는 나에게서 ‘약’을 찾았다. 설사약, 진통제? 다들 예상하겠지만, 아니다. 얼마 전 가수 구준엽씨가, 경찰이 시도 때도 근거도 없이 자신을 혐의자로 지목해 억울하다고 했던, 그 문제의 물건이 있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래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클럽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하우스 음악과 내 심장박동이 하나가 된 듯한 느낌에 정신줄을 놓아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딱히 약 먹은 것처럼 춤춘다는 데 그리 반박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웠다. 술 한잔 안 마신 채 아침이 가까워져오는 시간까지 온몸이 땀범벅이 되도록 춤을 추고 나면 힘이 솟았다. 클럽 안의 음악 소리에 귀가 먹먹해질수록 정신은 더 맑아지고 깊은 호흡은 깨끗하게만 느껴졌다.

내 밤 활동의 5할은 ‘춤’이다. 뭐 항상 클럽을 가는 것만 꼽는 것은 아니다. 클럽, 노래방, 집, 차 안…. 음악이 있고 내가 있는 곳은 어디든 ‘나의 무대’다.

이 지경이 된 게 이제 20년째다. 좀 심하게 늘려 잡은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이다. 7살, 초등학교 1학년 때 이후로 나는 춤을 출 때 가장 행복했다.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시골의 아주 작은 초등학교에 다녔던 나는 선생님의 권유로 ‘군 학예회’에 나가기 위해 처음으로 춤을 배웠다. 3개월 동안 속성으로 배운 춤동작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고, 그 춤으로 수많은 관중 앞에 서는 게 후들거렸던 내 귀에는 심장박동 소리만이 들렸다. 커튼을 젖히고 무대에 올라섰는데, 관중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익숙한 음악에 맞춰 춤추기 시작하자 긴장은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아직도 그 순간들이 눈에 선하다.

그 뒤로는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아니면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흔들고 또 흔들었다. 이상은의 , 룰라의 , 서태지와 아이들의 까지 수련회나 소풍 장기자랑 때면 반 친구들을 꼬여 팀을 만들고, 연습을 했다. 반응이 좋을 때도 있었고 나쁠 때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추는 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약’을 한 것처럼, 신발을 벗어 던진 채 춤을 춘다. 무아일체 무아지경(舞我一體 無我之境). 춤은 나이고 나는 춤, 그래서 나는 춤을 출 때 이 세상에서 발 딛고 있지 않은 것처럼 한없이 자유롭다.

금요일 밤 12시, 빨간 구두가 아닌 운동화를 신은 나는 끈을 고쳐매고 집 앞에서 홍익대 방향 막차 버스를 탄다. 숨이 멎지 않고서는 멈추지 않을 것만 같다.

이정연 기자 한겨레 경제부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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