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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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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는 애도일 뿐, 오해하지 말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안타까움 나타내거나 조문한 연예인들에 대한 걱정들…
“과도한 정치적 해석 말아야”
등록 2009-06-12 20:10 수정 2020-05-03 04:25

“개인적으로 참 많이 존경했고, 설마 하는 심정으로 실망도 잠시 했습니다. 그렇지만 고인에게 존경하고 사랑했다는 말씀을 전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단 5분도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고, 그저 멀리서 뵌 기억밖에는 없지만 그분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저의 인간적인 감정은 여러분에게 함께하자고 강요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저의 감정임을 미리 밝힙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조문에 나선 연예인들. 왼쪽부터 가수 전인권·윤도현, 배우 명계남, MC 김제동. 사진공동취재단·NEWS EN 제공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조문에 나선 연예인들. 왼쪽부터 가수 전인권·윤도현, 배우 명계남, MC 김제동. 사진공동취재단·NEWS EN 제공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다음날인 5월24일, 김제동은 자신의 팬카페에 장문의 글을 남겼다. 술을 마셨다는 그는 “소중한 분을 잃고 참 많이 울었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있던 5월29일엔 서울시청 앞 노제의 사회자가 되어 무대에 올랐다. 노란 모자, 노란 풍선을 들고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향해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저희가 슬퍼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슴속, 심장 속에 한 조각 퍼즐처럼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를 재해석한 말에 시민들은 눈물을 흘렸다. 무대를 내려온 김제동도 가수 윤도현을 부여잡고 펑펑 울었다. 애써 참은 눈물로 빨개진 눈을 하고 무대에 섰던 그는 자신이 가진 재주인 말솜씨로나마 고인을 애도하겠다는 듯 마이크를 굳게 쥐었다.

김제동에 대한 걱정 ‘미운털 박힐라’

사람들은 김제동의 눈물 어린 진심과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걱정했다. ‘현 정권에 미운털이 박히는 것 아닐까’ ‘방송일을 못하게 되진 않을까’ 마음을 졸였다. 노제 총기획을 맡았던 김명곤도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며 고마워했다. 김제동에게 사회를 맡은 소회를 들어보고 싶었다. 마침 그는 윤도현과 같은 소속사로 옮겨 한솥밥을 먹게 됐다. 하지만 인터뷰는 이뤄지지 않았다. 소속사의 한 관계자는 “인터뷰 요청이 많지만 지금 인터뷰를 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거절했다. 말을 아끼는 듯했고, 관심을 부담스러워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연예인들의 조문이 연일 화제였다.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문성근·명계남 외에도 유희열, YB밴드, 강산에, 전인권 등이 봉하마을과 각 지역에 차려진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일부 연예인들은 자신의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추모글을 올렸다. 개그맨 황현희는 “당신에게서 처음으로 도전이라는 단어를 배웠습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세요”란 글을 남겼다. 배우 김여진은 ‘슬퍼하는 것으로 다시 뵐 수 있다면’이란 제목의 글에서 “지금의 대통령님, 숨지 말아주세요. 바리케이드 치지 말아주세요. 우는 마음, 화내는 마음 다 받아주세요. 더 커져 범람하기 전에 슬픔의 강물을 둑으로 막으려 하지 말아주세요”라며 현 정부에 바라는 마음을 담기도 했다. 김민선·이준기·문근영 등도 홈피에 한 줄의 추모글과 국화 아이콘, 근조 리본을 단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이들을 숨었던 ‘노빠’ 연예인으로 보는 왜곡된 시선들도 있었다.

연예인들의 조문과 추모글이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인터넷에서는 ‘개념 연예인’(생각 있는 연예인)에 대한 분류 작업이 시작됐다. 누리꾼들은 조문을 한 연예인에게 관심을 쏟는 한편으로 추모의 말을 아낀 연예인들에겐 ‘스타’라는 이름이 아깝다며 나무랐다.

추모글을 올렸다가 진정성을 의심받으며 ‘이미지 마케팅’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인 경우도 생겼다. MC 박경림은 “참으로 사람 냄새 나는 한 분을 잃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며 미니홈피에 애도의 글을 올렸다. 하지만 그의 홈피를 방문한 한 누리꾼은 “이명박하고 대놓고 친한 척하더니 웃기지도 않는군요. 여운계씨 빈소에는 가더니 서울역에서 분향이라도 했느냐”고 말했다. 다른 누리꾼들의 지적도 이어지자 박경림은 “방송을 보다가 눈물이 나서 나름대로 애도를 표현한 것이었는데 그게 다르게 비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아직 대중에게 말이나 행동에서 믿음을 못 준 것일 수도 있다. 좀더 신중하고 진중한 말과 행동을 하는 연예인이 되겠다”는 답글을 남겼다.

조문하거나 추모글 올린 ‘개념 연예인’들?

국민으로서 순수하게 슬픔을 나타낸 연예인들의 조문과 추모글이 ‘개념 연예인’이다, ‘이미지 마케팅’이다 논란이 되면서 매니지먼트사들엔 비상이 걸렸다. 연예인들의 입단속에 나선 것이다. 한국방송의 한 예능 프로그램 PD는 “매니저들이 소속 연예인이 괜한 말 한마디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까봐 조마조마해하더라”고 말했다. 가수 DJ DOC 이하늘도 “봉하마을에 가서 조문을 하고 싶었지만 이런 기회로 연예인이 이름을 알리려 한다고 비쳐질까봐 참았다”며 “정치에 관심이 없지만 솔직하게 한 내 말과 행동이 사람들의 잣대에 따라 달라지는 걸 경험하는 건 연예인으로서 짊어진 짐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연예인이 자기 신념과 철학에 따라 하는 말은 쉽게 ‘정치적 커밍아웃’으로 읽히기도 한다. ‘정치적 참여’와 ‘사회적 참여’를 구분하지 못한 오류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 나섰던 배우 정찬. 사진 한겨레 김명진 기자

연예인이 자기 신념과 철학에 따라 하는 말은 쉽게 ‘정치적 커밍아웃’으로 읽히기도 한다. ‘정치적 참여’와 ‘사회적 참여’를 구분하지 못한 오류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 나섰던 배우 정찬. 사진 한겨레 김명진 기자

노 전 대통령 서거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연예인의 사회적 발언과 행동은 늘 사람들의 관심거리다. 그렇다고 이들의 말과 행동이 늘 논쟁의 중심에 서는 건 아니다.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건 등 국가 재난적 상황에서 연예인들의 말과 행동은 국민에게 솔선수범이 된다며 큰 독려를 받는다. 그러나 미선·효순양 추모집회나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등 사회문제에선 침묵하라는 내·외부적 압력이 들어온다. 선거 때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적 참여’와 내 건강과 인권을 지키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사회적 참여’를 구분하지 못한 결과다. 이 때문에 노제 사회를 맡았던 김제동 쪽도 순수한 애도가 괜한 오해를 살까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현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색’을 입을까봐서다. 문화방송 이민호 PD는 “선거 기간에 연예인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는 유세가 아니라면, 연예인도 국민인데 방송이든 사적 자리든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연예인들의 발언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해 직·간접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사회가 성숙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전 국민적 애도 역시 하나의 사회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연예인들의 조문과 추모 역시 공인이 아닌 국민으로서 보여준 말과 행동이다. 하지만 ‘공인’인 연예인이 국민적 감정 동요를 부추긴다는 보수 진영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한 인터넷 매체는 “김제동이 사적 감정을 앞세워 노제를 진행했다”고 비난했다.

연예인이 자기 신념과 철학에 따라 하는 말은 쉽게 ‘정치적 커밍아웃’으로 읽히기도 한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서 연예인들의 사회적 발언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논쟁이 붙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당시 가수 윤도현, 배우 정찬 등은 촛불집회에 참석했고, 배우 이준기·김민선·김가연 등은 광우병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정찬은 “우리 청소년들이 0교시 수업 하고 급식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죽어서 대운하에 뿌려질 수 없다”는 말로, 김민선은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넣는게 낫겠다”는 발언으로 논쟁의 대상이 됐다. 대중문화평론가 차우진씨는 “외국에서는 연예인들의 사회참여가 보편화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내 편’ ‘네 편’을 나누는 데만 급급할 뿐 배려와 관용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연예인들이 자신의 발언이 화제가 되면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이해된다”고 말했다.

연예인들이 소신 발언을 조심스럽게 하는 건 우리나라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연예인들은 ‘연예인’이란 직업적 ‘주홍글씨’ 때문에 무색무취로 살 수밖에 없다. 연예인들은 도덕적인 완전무결함을 요구받고, 자칫 사회적 발언이 문제되기라도 하면 직업적인 커리어도 지키기 어렵다. 그 예가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을 하거나 현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방송인의 퇴출이다. 윤도현은 공개적인 노무현 지지 연예인도 아니었고 현실정치에 참여한 적도 없지만, 지난해 자신이 진행하던 한국방송 에서 하차했다. 보수 세력으로부터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지 않냐”는 말을 들어왔던 코미디언 김미화는 자신이 진행하는 문화방송 라디오 의 하차 논란으로 마음고생을 겪어야 했다.

윤도현·김미화 등 실제 피해 입은 이들도

연예인들에게 소신과 신념을 밝히는 일은 직업적인 해고를 감수한 용기 있는 행동이 된다. 김제동의 용기는 그렇게 박수를 받았다. 배우 김명곤은 “시국선언하는 교수들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것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는 건데 그 때문에 연예인에게 경제적·심리적으로 압박을 준다면 이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평론가 차우진씨도 “연예인들의 사회적 행동이나 발언을 내가 가진 생각을 환기하는 계기로 삼는 게 적당하다”면서 “이번에 노 전 대통령 조문을 했던 연예인들에게도 ‘왼쪽’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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