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의 스케치북>. 사진 한국방송 제공
좀 지난 얘기지만 해야겠다. 그냥 넘어갈까 했지만 아무래도 발끝이 젖은 스타킹을 종일 신고 있는 것처럼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나는 자칭 타칭 ‘아이돌의 임금님’인 유희열을 좋아한다. ‘성공한 아이돌 팬의 대명사’가 된 개그우먼 박지선도 좋아한다. 그래서 지난 4월24일 첫 방송된 한국방송 음악 프로그램 을 기쁘게 기다렸더랬다. 이승환, 이소라, 언니네 이발관, 김장훈 등이 출연한 이날 방송은 물론 즐거웠다.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한 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에서 ‘수질 관리’라는 코너를 맡은 박지선은 이날 방청석에서 두 명의 20대 남성 일행을 골라냈다. 졸지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몹시 쑥스러워하는 그들에게 “사귄 지는 얼마나 되었냐” “카메라에 잡히기 전까지 두 손을 꼭 잡고 있더라”는 농담이 던져졌고, 방청객들은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초대손님이었던 이소라가 그들에게 “유희열씨 좋아하세요?”라는 지극히 뻔한, 그러나 농담에 숨은 의미 또한 뻔한 물음을 던졌을 때 역시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벌칙’의 일종인 ‘뽀뽀’를 강요받고 민망해하다 격한 포옹으로 간신히 상황을 벗어났다.
사실 이 모든 상황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장난이었다. 진행자와 방청객들은 악의 없이 즐거워한 것뿐이었고, 놀림의 대상이 된 이들도 다행히 그것을 장난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어차피 한국은 ‘남자 단둘’이 술집을 벗어나 영화관, 커피숍, 공연장, 패밀리 레스토랑에만 가도 흥미 어린 혹은 의심스런 눈길을 피할 수 없는 나라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바꿔 말하면 ‘남자끼리? 깔깔깔, 게이 아냐?’라는 시선 자체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지극히 이성애 중심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웃음이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며칠 전 한국방송 에 ‘한국 남자 이것만은 최고’라는 주제가 등장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영국 출신 에바는 “(동성애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며 의아해하고, 미국에서 온 비앙카는 “뉴욕에 동성애자가 많은 것은 ‘그냥 많은’ 게 아니라 자연스러울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한국에는 동성애자가 많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사실 어느 나라나 다 많아요. 하지만 한국에선 비밀로 하니까 적어 보여요”라는 캐나다인 도미니크의 말은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그것도 별 생각 없이 지키고 있는 호모포비아적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시선을 아무런 고민 없이 조장하고 재생산하는 것은 대중매체다. 물론 파리나 베를린처럼 커밍아웃한 정치인이 시장으로 당선되고 활동할 수 있을 정도의 의식 수준을 기대하는 건 아직 무리임을 안다. 하지만 이젠 정말 남자 둘이 손잡고 공연장에 가건 꽃구경을 가건 모텔에 가건, 그냥 냅둘 때도 됐다. 쳐다보지 좀 말고 놀리지 좀 마시라. 아, 이 좋은 봄날 여전히 싱글이라 부러운 마음에 자꾸 시선이 간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
최지은 기자·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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