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애자라는 사실이 벼슬은 아니라고 늘 생각하지만, 가끔 주위의 게이 친구들이 커밍아웃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덩달아 심란해진다. 공부를 잘해도, 멀쩡히 직장에 다녀도, 마음 맞는 애인이 있어도 그들의 첫 번째 고민은 늘 같다. 부모님께 자신의 정체성을, 존재를 어떻게 알리고 이해시키느냐 하는 문제다. 차마 자기 입으로 털어놓을 수 없어 오랫동안 힘들어하던 친구더러 부모님은 “우리 가슴에 못 박을 생각 마라”라고 미리 엄포를 놓으셨단다.
그런데 최근 주말 TV를 보다가 세상이 왜 아직도 이렇게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느냐에 대한 힌트를 몇 가지 얻었다. 문화방송 에 뜬금없이 ‘게이’가 등장한 것이다. 딱 달라붙는 바지에 ‘왕비호’ 같은 눈화장을 하고 요란한 장신구를 걸친 남자가 건실한 주인공 영국(이태곤)이 일하는 식당에 찾아와 추파를 던지자 영국의 옆방 하숙생 카일(마이클 블렁크)은 “저 남자, 게이예요”라고 단언한다. 영국은 “형씨 같은 사람들 거부감 있거나 무시하는 게 아니고, 난 그쪽이 아니거든요”라며 일견 ‘남자답고’ 정중한 거절 의사를 드러내지만, 남자가 만졌던 손을 불쾌하다는 듯 앞치마에 문질러 닦는 그의 태도나 남자의 시선을 받은 카일이 가슴을 X자로 가리며 “난, 출가한 몸이에요!”라고 호들갑 떠는 모습은 아무렇지 않은 척 게이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새로 시작한 문화방송 는 더하다. 일하느라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주인공 여준(기태영)이 친구 때문에 게이로 오인받고 주위 사람들이 그가 게이라는 소문을 퍼뜨리는 과정은 가볍고 코믹하게 그려진다. 한국 사회에서 커밍아웃이나 아우팅은 결코 장난이 아니며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라는 것을 조금도 생각해본 적 없을, 지극히 이성애자 위주의 발상에서만 가능한 전개다. 사내가 여자한테 관심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할머니의 서릿발 같은 호령이나, 5대 독자가 대를 잇지 못해 어쩌냐는 이웃 여자의 참견, 아들을 목욕탕에 끌고 가 온몸을 훑어본 뒤 “멀쩡한데, 문제는 없을 것 같다”며 게이는 신체적인 문제가 있을 거라고 여기는 아버지의 태도는 세대나 가치관의 차이로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결국 여준은 게이 의혹과 결혼 강요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안에서 정해준 여자를 만날 예정이고, 그들은 언젠가 행복한 결혼에 이를 것이다. 물론 여준이 정말 게이일 가능성은 0%다. 어차피 과 는 이성애자에 대한, 이성애자를 위한 드라마지 게이가 끼어들 틈은 없다. 하지만 그들만의 예쁜 사랑 이야기에 괜한 게이를 안주 삼아 씹는 건 그만했으면 한다. 주말 저녁, 가족 틈에 끼어 TV를 보다가 또다시 커밍아웃을 포기하게 될 친구들에게 미안해서다. 그리고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궁금해진다. 게이가, 만만한가?
최지은 기자·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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