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의 존재가 특히 소중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소개팅 자리에 앉자마자 서로 ‘너는 아니다’라는 눈빛을 주고받았지만 예의상 1시간은 차를 마신 뒤 헤어지고 나서 비로소 울분을 터뜨릴 때나 남자친구에게 포스트잇도 아니고 문자로 이별을 통보받은 뒤 정신이 공황상태에 빠져 있을 때 등 인생의 찌질함이 사무치는 날이 바로 그렇다. 시시콜콜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척 허세 부리지 않아도 “그냥 헤어지자고 하지 뭘 컬러 메일까지 보내고 난리래?” 따위 심드렁한 한 마디로 그 구질구질한 순간을 함께해주는 상대의 존재는 백 마디 위로의 말보다 더 고맙다. 그러게, 인생 뭐 있나. 10년 전에도 찌질했고, 지금도 찌질한데 새삼 더 나빠질 것도 없지.
tvN의 새 다큐 드라마 는 굳은 의리나 뜨거운 우정 대신 바로 그 ‘찌질함’을 공유하는 중년 남자들에 대한 생태보고서다. 2000년 성인 시트콤의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문화방송 의 제작진이 “그때 그들은 10년 후 어떻게 되어 있을까”를 궁금해하다 이 작품을 통해 다시 모였다. 우리는 보통 결혼과 영원한 행복이 드라마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만 인생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삽질’ 역시 멈춰지지 않는 법이다. tvN의 또 다른 히트작 에 이어 를 집필하고 있는 한설희 작가는 “잘나가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곤 하는 남자 나이 마흔, 인생에 아킬레스건 하나씩은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한국방송 의 F4 같은 꽃미남 군단은 물론 문화방송 에서도 미중년 3인방이 인기를 끌었던 요즘 추세에 비해 의 남자들은 외양부터 초라하기 그지없다. 조명 아래 선명한 주름살과 기름기 낀 얼굴, 불룩 나온 뱃살을 그대로 드러내며 치사하게 투닥대는 이 서른아홉 살 아저씨들에게는 심지어 애틋한 로맨스도 없다. 두 번이나 이혼한 골프 코치 다훈(윤다훈)은 유부녀와 사귀다가 간통죄로 징역을 살고, 골프웨어숍 사장인 상면(박상면)은 수차례의 사업 실패로 히스테릭한 아내에게 꽉 쥐여 살며, 아직 미혼인 문화평론가 웅인(정웅인)은 연애보다는 건담 프라모델 조립에 정성을 쏟고 머리가 허연 노모에게 반찬 투정이나 일삼는 한심한 중년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이 찌질하고 밉상에다 이기적인 주인공들의 궁상맞고 시시콜콜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점점 쏠쏠해진다. 원칙이나 상식이나 믿음 따위는 모두 무너지고 기댈 것은 오로지 나 자신뿐인 이 나라, 대한민국 40대 남성은 ‘영혼의 노숙자’로 불리는 세상에서 어지간히도 철은 없지만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욕망에 솔직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비록 ‘영혼이 초딩’이어도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아, 그래도 소개팅에서 웅인 같은 남자를 만나는 건 사양하겠다. “김태희는 키가 작아 별로, 한가인은 코에 점이 있어 별로”라는 남자와 1시간이나 마주 앉아 있을 자신은 없으니 말이다.
최지은 기자·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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