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도 때가 있지, 이제 스무 살 애들 같은 연애는 하고 싶어도 못하겠어.” 일과 공부로 한동안 연애를 미루다가 드디어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 연애 중인 친구는 요즘 가끔 탄식한다. 이제는 피부가 푸석해져 조명 환한 지하철 데이트보다 꼭 얼굴을 마주 보지 않아도 되는 자가용을 선호하게 되었다든가 하는 것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미친 척하고 부리는 애교처럼 평소 ‘안 하던 짓’을 한다는 게 점점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한국방송 는 바로 그 ‘안 하던 짓’을 안 하고 버티다가 마흔이 된 남자 조재희(지진희)에 대한 이야기다. 2006년 방송된 동명의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에 사실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 남발되는 것 같은 리메이크도 반갑지 않았고, 동물성 마초이면서 묘하게 까다로운 성미의 주인공 구와노를 완벽하게 표현했던 아베 히로시에 비해 지진희는 아무래도 너무 착하고 바른 남자로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웬걸, 구와노가 구워먹는 고기에 비해 조재희의 고기가 좀 맛없어 보이는 것만 제외하면 한국판 역시 상당히 흥미로운 드라마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노총각’이라 하면 떠오르는 남자와 조재희는 그와 전혀 다른 캐릭터다. 인정받는 건축가에 외모도 준수하다. 대신 사회성은 좀 떨어진다. 클라이언트든 현장감독이든 수틀리면 바로 들이받고, 동네 꼬맹이들의 RC카를 자신의 커다란 RC카로 쳐내면서 진심으로 의기양양해한다. 결혼은 “아내 입맛대로 집 뜯어고쳐주고 성격 개조당하고 인격 박탈당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아이가 생기는 건 “너무 폭탄이라 입에 담기도 싫”단다. 치질에 걸려 마흔 살 생일에 여의사 문정(엄정화)에게 항문 검사를 받는 굴욕을 당하고도 그는 좀처럼 성질을 죽이지 않는다. 끊임없는 독설을 책망해봤자 당당하게 “사실이 그렇습니다”라고 주장하는 데는 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배배 꼬인 말을 내뱉어도 조재희를 미워할 수 없는 것은 그가 단지 친절하게 말하는 법이나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것에 서투를 뿐이기 때문이다. 부하 직원에게 주말에 쉬라는 말 대신 “옆에서 걸리적거리는 것보다 혼자가 낫다”고 하고, 기껏 돈 빌려주러 가서는 멋쩍음을 감추려 “돈이 필요하면 개를 먼저 팔았어야지. 비싸 보이는데”라고 말해 욕을 먹는 이 남자, 볼수록 친근하다 했더니 우리 아버지를 닮았다. 총각 시절 동생들이 밥상에 김 부스러기만 흘려도 눈살을 찌푸렸다던 아버지는 다행히 결혼을 했고 두 아이를 그럭저럭 키우며 주위를 놀라게 했다. 비록 요즘도 “맛있다”는 말 대신 “니 엄마 솜씨가 많이 늘었다”는 삐딱한 칭찬으로 듣는 이를 불안하게 하지만, 꼭 결혼이 아니더라도 타인과 타인이 만나 ‘안 하던 짓’들을 하며 벽을 깨나가는 과정은 인생의 가장 재미있는 지점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말엔 문정처럼 사이다와 김밥을 사서 시티투어버스나 타봐야겠다. 재희 같은 남자를 못 만나더라도 주말에 사무실이나 집 밖에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안 하던 짓’이니까.
최지은 기자·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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