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 가 방송되던 2004년, 서른은 멀어 보였다. 졸업반이었지만 취업은커녕 도대체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그 시절, ‘노처녀’ 구박덩이 방송기자 이신영(명세빈)은 열여덟 번의 밤 동안 나에게 인생의 진리를 리포팅해주었다. “인생엔 견뎌야 할 때가 있다는 것, 눈보라 친다고 해서 웅크리고 서 있으면 얼어죽는다는 것, 눈·비바람 맞으면서도 걷고 또 걸어가야 한다는 것! 처절한 고통의 현장에서 눈물·콧물 흘리는 이신영이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 그녀가 돌아왔다. 6년이 흘렀지만 아직 서른네 살로 천천히 나이를 먹은 이신영(박진희)에 비해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나는 멀게만 느껴지던 서른을 어느새 넘긴 채 를 본다. 번듯하고 탄탄한 직장에 다니는 신영은 물론 미모와 능력을 겸비한 동시통역사 다정(엄지원), 재물 복을 타고난 레스토랑 컨설턴트 부기(왕빛나) 등 세상에 모자랄 것 없어 보이는 이 골드미스들에게 과연 어느 타이밍에 공감할 수 있을까 잠시 의심하기도 했지만, 다정이 자신을 차버린 남자의 집 앞에서 울부짖다 물벼락을 맞는 순간 나는 친구들에게 문자를 돌렸다. “꼭 봐라.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날 것이다….”
워싱턴 연수 기회를 놓칠 수 없어 결혼을 포기했던 신영이지만 로맨틱한 프러포즈까지 했던 새 애인은 모텔 화재 현장에서 다른 여자와 함께 발각되고, 오기로 일에 매진했더니 구안괘사로 입이 돌아가버렸다. 돌쇠처럼 일해봤자 회사에선 은근히 명예퇴직을 권장하는 걸 보면 남자나 일이나 배신하긴 마찬가지. 잘 만나던 소개팅남이 잠수 탄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술 마시고 응급실까지 쳐들어갔던 다정이 들은 말 또한 “감기 걸렸다니까 집에서 만든 유자차 가지고 찾아온 게 부담스러워”라는 배은망덕한 대답이었다. 매사에 쿨해 보이는 부기조차 이십대를 온전히 한 남자에게 바쳤다가 ‘효도는 셀프’임을 죽어도 모르는 그와 시가 식구들 때문에 파혼하는 시행착오를 거쳤으니, 언니들의 거침없는 몸개그와 망가짐을 보면서도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란 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다고 요즘 신영은 옛 애인 상우(이필모)와 10살 연하 꽃미남 천재 뮤지션 하민재(김범) 사이에서 행복한 고민 중이지만, 그보다 내가 그녀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실연당한 날, 술을 잔뜩 마시고서도 중요한 통역을 위해 공부하러 간다며 자리를 나서는 다정은 길바닥에 쓰러져서도 사랑스러웠고, 취재를 허가받기 위해 몇 번이고 스파링 상대를 자처하는 신영의 ‘무식한’ 근성과, 결정적 순간에 가장 현명한 결단을 내렸던 부기의 용기도 멋지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결혼이나 성공에 대한 갈망이라기보다는 부딪치고 깨지고 때로는 웃음거리가 되더라도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는 깨달음을 얻은, 끝없는 마감의 현장에서 안구건조증과 요통에 시달리는 최지은이었습니다.
최지은 기자·10asia.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미 대선 막 올랐다…초박빙 승패 윤곽 이르면 6일 낮 나올 수도
3번째 ‘김건희 특검법’ 국회 법사위 소위 통과
‘살얼음 대선’ 미국, 옥상 저격수·감시드론…폭력사태 대비한다
9살 손잡고 “떨어지면 편입”…대치동 그 학원 1800명 북새통
한양대 교수들 시국선언…“윤, 민생 파탄내고 전쟁위기 조장” [전문]
미국 대선 투표장 둘러싼 긴 줄…오늘 분위기는 [포토]
백종원 믿고 갔는데…“전쟁 나면 밥 이렇게 먹겠구나”
패싱 당한 한동훈 “국민 눈높이 맞는 담화 기대, 반드시 그래야”
로제 ‘아파트’ 빌보드 글로벌 2주째 1위
“대통령으로 자격 있는 거야?” 묻고 싶은 건 국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