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은 특이한 드라마다. 구준표 같은 재벌 2세, 캔디 같은 여주인공, 한 남자를 둘러싼 이복 자매의 삼각관계, 주인공을 궁지에 몰아넣는 의붓어머니 등 익숙하다 못해 식상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이야기가 진부하거나 ‘막장’으로 흐르지 않는다. 심지어 시청률 한 자릿수를 기록하는 미니시리즈가 비일비재한 요즘 같은 때 소리 없이 인기를 얻은 이 작품은 40%에 가까운 시청률을 내며 순항 중이다. 물론 거기엔 “내가 너 믿는데! 좋은데! 갖고 싶은데!” 따위 1970년대 테리우스 같은 대사를 선보이면서도 채널을 고정하게 만든 선우환(이승기)의 매력이 단단히 한몫했겠지만, 내가 에서 선우환보다 멋지다고 생각하는 이는 사실 그의 할머니, 진성식품 장숙자(반효정) 사장이다.
자라면서 나 처럼 한때 유행했던 ‘석세스 스토리’의 주인공들로부터 몇 번 뒤통수를 맞은 탓에,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열아홉 나이에 유복자를 업은 채 시장 귀퉁이에서 장사를 시작해 전국에 수백 개 가맹점을 가진 설렁탕 전문 업체 진성식품의 대표이사가 되었다는 장숙자 사장의 입지전적 성공기 자체가 그리 대단해 보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눈길을 끄는 것은 맨몸에서 그 엄청난 부를 이룬 다음의 그의 행보다. 진성식품에서는 직원의 50%를 싱글맘으로 우선 채용하고, 출산 및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직원들은 불안정한 비정규직으로 떨어지지 않고도 근무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 기업에 손실을 입히면서까지 제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재벌 총수가 번번이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 1위’로 뽑히곤 하는 게 현실이다보니, 손자 명의로 사둔 땅 역시 모 장관 후보자의 경우처럼 ‘땅을 사랑해서 모은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기숙사를 짓기 위함이며 회사는 자손에게 물려줄 재산이 아닌 수천 명 직원들의 삶의 터전이라는 장숙자 사장의 경영철학은 드라마에서 기습 키스신보다 더 큰 대리 만족을 선사한다.
심지어 돈 귀하고 사람 귀한 줄 모르는 손자는 매장의 파트타임직으로 ‘낙하산’ 태워 보내고,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좋은 경영자의 자질이 보이는 은성(한효주)을 후계자로 지목하는 데서는 냉철한 판단력 또한 뛰어난 경영자 인품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런데 “동정심이 가엾게,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라면 ‘측은지심’은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손을 내미는 마음”이라는 명언으로 TV 보다가 메모까지 하게 만드셨던 장숙자 사장님이 최근 노환으로 쓰러지셨다. 내게 재산을 물려주기로 하신 것도 아닌데 의식을 잃으실지 기억을 잃으실지 무척이나 걱정이 된다. 바지에 똥 싸거나 밭에다 된장 퍼다 거름 준 것만 아닐 뿐 도통 어른 대접 할 마음이 들지 않는 노인들이 많은 이 세상에 그만큼 존경할 만한 ‘어르신’의 존재가 드물어서다.
최지은 기자·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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