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 의 ‘1박2일’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경쟁 프로그램인 SBS 의 ‘패밀리가 떴다’가 남녀 고루 섞인 경영대 MT라면 ‘1박2일’은 남자 복학생들만 모여 가는 공대 MT 같다고 표현한 적도 있는데, 연애 감수성 희박한 건어물녀인 나에게는 그래서 러브라인 따윈 거의 보이지 않는 후자가 더 즐거운 건지도 모르겠다.
<해피선데이>의 ‘1박2일’. 한국방송 제공
그런 ‘1박2일’에서는 대학 졸업반부터 마흔 살 가장까지 다 큰 남자들이 모여 방 안에서 우당탕 숨바꼭질을 하고 낙엽 멀리 던지기, 성냥개비 홀짝 맞히기 등 준비물도 필요 없고 룰도 단순하기 그지없는 게임에 목숨을 건다. 특히 따뜻한 방에서 자고 싶고 맛있는 음식 먹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두고 벌이는 복불복 게임의 스릴은 쾌적한 주거환경과 충분한 음식이 제공되는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그러나 ‘1박2일’의 진짜 재미는 종종 예상치 못한 데서 나온다. 거구의 강호동이 동네 노인들에게 허리를 한껏 굽히고 “아버지”라 부르며 재롱을 피울 때, 이수근이 시골 장터에 나온 어르신들에게 모처럼 돼지국밥으로 한턱을 내며 ‘골든벨’을 울릴 때, 고깃배를 타러 나가거나 꼬막을 채취할 때만큼은 대통령도 부럽지 않은 각 동네 이장님들의 카리스마가 발휘될 때, 마을회관에 묵었던 출연자들이 감사의 표시로 벽에 정성껏 사인을 남길 때 나는 묘한 감동을 느낀다. 그것은, 서울이 아닌 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도 뉴스도 정부 정책도 ‘서울 공화국’처럼 돌아가는 이 나라에서 ‘1박2일’은 수도권이, 신도시가, 뉴타운이 아니라 ‘농촌’이, ‘어촌’이, ‘장터’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서울에서 온 연예인들에게 어느 촌로가 “호동이 없네?”라며 친근하게 말을 붙이고 “고생들 해”라고 당부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은 요즘 세상에 대접받지 못하는 이들, 요즘 세상이 추구하는 실용이나 세련됨과 거리가 있는 이들에게도 예의를 갖추고 대접하는 이 프로그램의 태도 덕분이다. 메이저리거 박찬호와 야구할 때나 시골 주유소에 들른 손님들을 맞이할 때나 이들은 한결같이 진심을 다 바친다. 그래서 음악이 약간 촌스러워도, 자막이 조금 낯간지러워도 왠지 ‘1박2일’은 함부로 비웃을 수가 없다.
그런데 요즘 강원도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1박2일’팀이 그곳으로 여행을 가면 어떨까. 숙박업소 사우나가 문을 닫고 주민들이 급수차에 줄을 서서 식수를 받아쓰며 세수할 물도 부족하다는 마을에 찾아가서 저녁식사 때는 마실 물로 복불복 게임을 하고 아침에는 근력 부족한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대신 물 배급을 받아다 드리는 거다. 한겨울 야외 취침만 해도 충분히 고생하고 있는 그들에게 굳이 이런 제안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물도 기름처럼 아껴 쓰라”는 대통령 말씀보다 MC몽이 “까나리액젓 마셨는데 입 헹굴 물이 없어! 이건 리얼이야, 리얼!”이라고 펄펄 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무래도 물 절약을 위해 훨씬 효과적일 것 같기 때문이다.
최지은 기자·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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