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먹는 장면을 위해서 가장 신경쓰는 것은 ‘맛’… 드라마 에 ‘출연’하는 음식을 만드는 진짜 ‘식객’을 만나다
▣ 하동=글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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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차리는 사람들
향연이다. 꿩, 노루, 멧돼지로 조리한 궁중 보양식인 나평전골이 등장하고, 호박꽃이 탕 속으로 들어가 화려하게 노란 꽃을 피운다. 발가벗겨진 새우가 미나리와 계란 노른자를 만나면서 옷을 걸치고, 청국장이 보글보글 거품을 토한다. 눈으로 보는데 입에서 침이 고인다. 허영만 화백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sbs 드라마 의 화면은 궁중 요리에서부터 서민 음식에 이르기까지 수백 가지 음식들로 넘쳐난다.
황정민의 (철지난) 수상 소감처럼 배우들이 밥숟가락 걸쳐놓을 ‘밥상’을 차리는 사람들을 찾아갔다. ‘음식감독’과 ‘음식팀’이라는 다소 생소한 직함을 가진 이들은 화면에 몇초간 스쳐갈 뿐인 음식까지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만큼 양념을 넣고 간을 맞춘다. 그들 덕에 화면에 빛깔 좋은 포만감이 흐른다.
“항아리에 김칫물이 좀더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도마 옆에 행주도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고.” 김수진(54) 음식감독이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말고 한철수 프로듀서에게 말을 건넸다. “용준아, 항아리에 김칫물 좀더 채워봐. 더, 더, 더, 오케이. 도마 옆에 행주도 하나 갖다놓고. 아니, 거기 말고 왼쪽에. 그래.” 한 프로듀서가 모니터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차김치는 양념 많이 하시면 안 돼요~”
아직도 빠진 것이 있을까. 김 감독은 수돗가를 훑는 카메라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한 프로듀서에게 다시 한마디 건넨다. “마늘과 소금에 절여놓은 배추가 좀 부족해 보이는데요.” “일단 한번 가보죠. 괜찮을 것 같은데요.” 이어 한 프로듀서의 ‘큐’ 사인이 떨어지자, 중견 연기자 김지영이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이어간다. 마늘을 능숙하게 빻아 도마 한쪽으로 밀어두고, 소금에 절여놓은 배추를 하나하나 꺼내 물에 헹군다. 그러다가 실제 시골 할머니가 김치를 담그듯 옆으로 보기 싫게 삐져나온 배추잎을 따내 입 안에 넣고 우걱우걱 씹는다. 대본에 적혀 있지도 않고, 누가 하라고 권유한 것도 아닌 즉석 연기가 자칫 밋밋하게 끝났을 수도 있는 연기에 감칠맛을 더한다. “역시, 대단하셔.” 한 프로듀서가 ‘오케이’ 사인을 외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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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 감독은 김지영에게 다가가 함께 대본을 보며 배추에 양념하는 동선을 일일이 맞춘다. 그러면서 차김치의 특성과 양념하는 법을 간략히 설명한다. “차김치는 차밭이 많은 하동 지방에서 주로 담가 먹어요. 김치의 발효 속도와 차의 발효 속도가 달라서 조금씩 담근 뒤 빨리 먹는 김치예요. 일반 김치처럼 양념하는 것이 아니라 동치미처럼 담가야 하기 때문에 연기하실 때 양념을 많이 하시면 안 돼요.”
전국이 장마전선의 영향을 받은 6월17일 오후. SBS 드라마 촬영이 한창인 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의 한 작은 마을에서 김수진 음식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드라마 제작에서 다소 낯선, 음식감독이라는 직함을 단 그는 20년 넘게 한식 요리연구가로 활동한 한식 베테랑이다. 2005년 영화 에서 궁중음식을 연출한 것이 계기가 돼 각종 영화에서 음식을 담당했다. 영화 에서는 궁중연회 장면을 선보였고, 영화 에서는 20여 명의 푸드제작팀을 이끌고 수백 가지의 음식을 연출했다. 지금은 드라마 외에도 조인성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 과 김민선 주연의 영화 에서 음식을 담당하고 있다.
그가 음식감독으로 참여하고 있는 은 허영만 화백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24부작 음식 드라마. 우리 음식의 진정한 맛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요리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2003~2004년 인기리에 방송된 문화방송의 이 궁중요리에 주력했다면, 은 서민요리에 더욱 주목한다. 최고의 전통 한식점인 운암정을 배경으로 전통 궁중요리의 맥을 이어가는 대령숙수(조선시대 궁중의 남자 조리사·최불암)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벌이는 성찬(김래원)과 봉주(권오중)의 요리 대결이 전국 방방곳곳의 음식을 소재로 다채롭고 긴장감 있게 그려질 예정이다.
이번 드라마에서 음식은 성찬과 봉주를 대변하는 매개체이자 주제를 전달하는 도구다. 매회 이야기가 전개되는 구조는 음식에 기반을 둔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드라마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음식감독과 푸드팀이 대본작업에 참여한다. 한철수 프로듀서는 “에 등장하는 수백 가지의 음식을 준비하고 만드는 것은 음식감독과 푸드팀원”이라며 “음식감독은 대본작업부터 참여해 음식의 콘셉트와 모양, 재료 등을 논의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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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작업부터 참여해 음식 콘셉트 정해
6월17일 방송된 1회에는 총 70여 가지의 음식이 등장했다. 특히 궁중음식 시연회 장면에서는 연근무쌈카나페와 단호박새우카나페, 호박꽃탕, 오징어꽃 등 화려한 요리들이 눈길을 끌었다. 더욱이 같은 날 방송된 2회에서는 대령숙수가 “조리법이 개발되지 않았다”며 경합 과제로 제시한 민어 부레로 주인공들이 민어부레회덮밥과 부레석류탕, 민어부레순대라는 생소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장면이 그려졌다. 이같은 요리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조리법이 있는 요리들이에요. 통용되는 음식이 아니라서 조리법이 없다고 설정을 한 거죠. 대본 작업할 때 작가가 아이디어를 냈고, 푸드팀에서는 그런 음식의 모양과 색깔을 어떤 콘셉트로 어떻게 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두 달 동안 민어 부레에만 매달려 있었던 것 같아요. 해외 요리대회에서 입상한 작품들을 보면서 응용해보고, 전통 궁중요리책을 보고 여러 각도로 시도를 한 끝에 그런 모양과 색을 갖춘 요리가 탄생하게 됐죠.” 이혜원 푸드팀장의 말이다.
푸드팀은 요리를 할 때마다 조리법을 남기고 사진을 찍어둔다. 언제 어떻게 활용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촬영장에서 음식을 세팅할 때도 반드시 사진으로 남긴다. 촬영이 중단됐을 때 재촬영을 쉽게 하기 위해서다. 하나의 음식을 준비하더라도 요리의 전 과정을 카메라에 빠르게 담기 위해 가공되지 않은 원재료 상태와 중간 정도 조리된 상태, 그리고 완성된 요리, 세 단계별로 따로 준비한다.
세트장에는 주방이 따로 있어 항상 최적의 요리를 선보일 수 있지만 야외 촬영에서는 여건이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푸드팀은 항상 가스버너와 여러 종류의 양념, 주방도구를 차량에 싣고 다닌다. 김 감독의 공구박스에는 칼, 꽃가위, 핀셋, 장갑, 온도계 등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온도계는 연기자가 음식 먹는 연기를 할 때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적당한 온도를 맞추기 위해 필요하다.
음식은 NG에 대비해 항상 넉넉히 준비한다. ‘남기는 한이 있더라도, 모자라지 않게’가 푸드팀의 신조다. 촬영 때 쓰이는 요리는 일반 요리와 다르지 않다. 못 먹는 음식을 만드는 법이 없다. 김 감독은 특히 맛에 신경을 쓴다고 했다. “맛있게 먹는 연기를 해야 하는데 음식이 맛이 없으면 연기가 자연스러울 수 없잖아요.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서는 음식도 맛있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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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보다 힘든 건 철 지난 음식 재료 구하기
이 음식 드라마다 보니 스태프들이 때로는 최고급 음식을 맛보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쇠고기를 소재로 한 장면을 촬영할 때는 촬영 뒤 남은 최고급 한우로 연기자와 스태프들이 회식을 즐겼다. 물론 촬영에 사용된 모든 음식을 먹는 것은 아니다. 카메라에 노출되는 시간이 짧은 음식은 괜찮지만, 장시간 노출되는 음식은 대부분 버린다. 뜨거운 조명을 받아 음식이 변질됐을 우려가 크고, 세트장이나 야외촬영장의 먼지가 음식에 내려앉아 위생상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혜원 팀장은 요리할 때 힘든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요리할 때보다 철 지난 음식 재료를 구해야 할 때가 더 힘들다. 특히 생선이 그렇다”고 말했다. “영화 촬영할 때였어요. 10월에 황복회 뜨는 장면을 찍어야 했는데, 황복은 4~6월에 출하되거든요. 10월에 찾으려니 없죠. 우여곡절 끝에 남해에서 양식하는 분에게 수백만원을 주고 샀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해요.” 그 아찔한 일이 드라마 을 하면서도 있었다. 민어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12월 초에 민어 촬영이 있었어요. 민어는 보통 7월부터 추석 때까지가 제철이에요. 어쩔 수 없이 비슷하게 생긴 점성어를 대신 사용했죠.”
이날 촬영분은 7월 말 방송될 13회분으로 트럭을 타고 전국을 떠돌며 장사를 하던 성찬이 치매에 걸려 집을 찾지 못하는 할머니(김지영)를 무사히 집까지 안내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비록 치매에 걸렸지만 김치 담그는 실력만큼은 잊지 않은 할머니를 통해 성찬이 김치의 참맛을 알아간다는 내용이다. 김치가 중심소재다 보니 이날 푸드팀은 배추 다듬고 무 썰고 양념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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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장으로 이용되는 집 대청마루에 올라 방문을 열어보니, 어지러운 촬영장보다 더 어지러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배추, 무, 파, 오이, 대추, 밤, 새우젓, 액젓 등이 한가득 들어차 발 디딜 틈도 없는 방에서 푸드팀 정다희(24)씨와 김유분(57)씨가 대추, 밤, 오이, 당근을 분주히 손질하고 있었다. 대추와 밤은 얇게 채를 썰고 오이와 당근으로는 꽃 모양을 냈다. 마늘과 생강을 빻기도 했다. “비닐에 담긴 새우젓은 따로 통에 담으시고, 소금에 절인 배추와 김치 양념 다시 한 번 확인해주세요.” 김수진 감독이 촬영장과 방을 오가며 식재료와 음식을 꼼꼼히 확인했다. “지금 촬영되는 신이 끝나면 바로 김치 담그는 장면을 찍어야 해요. 배추김치, 파김치, 무김치, 열무김치, 오이소박이 등 여러 김치를 한꺼번에 찍어야 해서 지금 서두르지 않으면 해가 떨어져 촬영을 못할 수도 있거든요.” 이 팀장이 오이를 반쯤 잘라 건네며 말했다.
스쳐지나가는 음식을 위하여
진수와 조 여사(김애경)가 성찬을 도둑으로 오해하면서 한바탕 소란을 벌이는 촬영이 끝나자, 김 감독과 이 팀장, 정씨가 김치와 식재료를 촬영장으로 급히 옮겼다. 그때, 하늘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순식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20여 분 동안 여러 의견이 오간 끝에 한 프로듀서는 ‘철수’를 결정했다. 어렵게 준비한 재료와 김치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다시 새로 준비해야죠.” 김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웃음이 나올까. 그는 “촬영장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화면에서는 몇초 안에 간단히 지나가는 음식이지만, 준비하는 사람들의 손길은 그리 간단하지 않죠?” 분주히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 위로 장대 같은 장맛비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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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거다.” “안 마시면?” “볼 일 없는 거지. 죽을 때까지.” 한 잔 가득 담긴 소주를 수진이 ‘원샷’하자 철수는 뜨거운 키스를 날린다. 정우성과 손예진이 열연한 영화 의 한 장면이다.
역시 영화는 영화다. 저렇게 맹물을 가지고도 멋진 장면을 연출하니 말이다. 함께 술 마시는 사람이 맹물을 마시면서 ‘캬~’라고 ‘뺑끼’를 부린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그런 ‘뺑끼’에는 언제나 눈감아줄 준비가 돼 있다.
연기자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마시는 술은 물론 술이 아니다. 소주의 경우, 짐작하다시피 맹물이다. 연기자가 ‘따다닥’ 소리를 내며 병마개를 딴 뒤 잔에 술을 채웠더라도 다음 컷에서 실제 마시는 것은 물이다. 맥주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진하게 끓인 보리차에 사이다를 섞거나 보리음료와 사이다를 혼합해 만드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엔 노래방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무알코올 맥주음료를 주로 사용한다. 맥주 거품을 강하게 표현하고자 할 때는 크림을 조금 넣는다. 와인은 포도주스에 물이나 투명한 이온음료 등을 섞어 색을 내고, 양주는 보리차나 홍차로 대신한다. 사극에서 자주 사용하는 막걸리나 동동주는 ‘아침햇살’과 같은 쌀음료로 만들고, 사약은 쌍화탕으로 제조한다. 쓴맛이 너무 강해 연기자의 연기를 방해하는 경우, 김 빠진 콜라를 살짝 섞기도 한다.
연기자들이 차나 커피를 마실 때도 직접 마시는 법이 드물다. 마시는 시늉만 할 뿐이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더라도 미리 빈 컵을 집어넣은 뒤 이를 빼들고 마시는 척한다. 왜 그럴까? 뜨거운 차가 입 안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대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커피나 차를 옷에 쏟는 장면일 경우, 소품팀은 연기가 나도록 커피에 드라이아이스를 넣는다. 뜨겁게 보이기 위해서다. 커피 세례를 받은 연기자는 “앗 뜨거!”라고 말하지만 솔직한 심정은 “앗 차거!”다.
드라마 세트장에서 여러 가지 음식들로 가득 차 있는 냉장고가 돌아가는 경우는 사실 거의 없다. ‘웅~’ 하는 냉장고 소리가 마이크에 잡히기 때문이다. 연기자가 냉장고 문을 여는 장면을 촬영할 때만 전원을 연결한다. 참고로 냉장고 안을 살피는 연기자의 얼굴을 정면에서 찍을 때는 뒷면을 뚫어놓은 냉장고를 사용한다. 뒤편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연기자가 문을 열었을 때 조명을 줘서, 냉장고에 불이 들어오는 효과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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