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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내셔널리즘, 사이비 적에 눈 돌리기

등록 2007-11-23 00:00 수정 2020-05-03 04:25

다카하라 모토아키의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일본에서 독도 관련 사건이나 발언만 나오면 ‘사이트 일제 폭격’에 나서는 네티즌들은 어떤 사람일까.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항의하는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일까. 박정희 대통령 향수에 젖는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일까. 같은 ‘민족주의’ 양상이지만 전개 모습은 사뭇 다르다. 다카하라 모토아키는 (정호석 옮김, 삼인 펴냄)에서 이러한 ‘내셔널리즘’을 두 가지로 나눠서 분석했다. ‘고도성장형 내셔널리즘’과 ‘개인불안형 내셔널리즘’이다. 앞의 고도성장형은 국가 주도하의 경제성장 정책에 기반한 것이고, 뒤의 개인불안형은 유동인구화 세력의 ‘취미화된 내셔널리즘’이다. 다카하라는 내셔널리즘을 일본의 상황에서 분석하고 이것을 동아시아 고도성장 국가인 한국과 중국의 사례로 나눠 살펴본 뒤 이를 엮어서 분석한다.

저자는 내셔널리즘 분석이 경제·사회적 맥락 아래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전방위적인 사회 분석이 이루어진다. 저자는 경제성장을 3단계로 나눈다. 총중간층화-탈공업화-사회유동화 단계다. 총중간층화는 일본이 석유파동의 여파를 이른 시일 내에 극복하고 이뤄낸 ‘세계에서 유례없는 중산층화’를 말한다. 그 주역은 단카이 세대다. 이들은 일본 특유의 ‘회사주의’를 수립한다. 하지만 서서히 회사가 생활의 모든 것을 규정하는 시대가 종언된다. 1990년대 후반 ‘프리타’(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들이 등장한다. 사회유동화다. 이 젊은이들에 대한 의견은 두 가지로 나뉜다. ‘칠칠치 못한 젊은이’라고 몰아붙이는 ‘자기책임론’과 단카이 세대가 굳게 자리를 지키면서 젊은이들을 몰아내고 있다는 ‘단카이 세대 책임론’이다. ‘단카이 세대 책임론’은 우석훈·박권일의 (레디앙 펴냄)의 주장과 비슷하다. 둘은 ‘단카이 탓인가, 젊은이들 탓인가’라는 문제로 나뉘어 대립한 것이다. 저자는 문제의 본질은 사회경제적 변동이라고 말한다.

고도경제성장 시절 정부가 각 기업을 구분해 보호하던 정책은 이 시기에 무너진다. 노동자들은 ‘총외부노동력’이라는 상태로 내몰린다. 거기다가 글로벌화로 경쟁의 무대는 신흥공업국을 포함한 전세계로 확장된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 이주노동자가 맡았던 저임금 노동을 일본 시장에서는 ‘청년’이 맡는다. 이들의 세대 간 대립을 대신해 내셔널리즘이 나타난다. 보수 논단은 역사 문제를 고집스레 주장하는데 이는 “동아시아를 관통하여 벌어지는 위험스런 변동을 견뎌내기에 힘이 부치는 말단 기업인들의 고통을 위로해주는, 일종의 위무로서” 기능한다. 상하로 분리된 청년층에게 이런 내셔널리즘은 “자국의 내력으로부터 생긴 문제를 은폐하고 사이비 적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일본의 아시아 멸시의 전통이 아니라 그들이 안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이 이러한 사태의 배경이라는 것이다. “일본 내셔널리즘은 ‘국민’을 ‘세대’라는 이름의 구분선으로 토막낸 후 그 아랫세대를 국민으로 환산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는 그들 젊은 세대를 ‘내팽개침으로써’ 자신들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떠넘기고서야 비로소 가능했던, 말하자면 제멋대로의 내셔널리즘이었다.” 좌파가 공격하는 내셔널리즘도 우파가 사랑하는 내셔널리즘도 아닌 것이다.

1976년생 약년의 저자는 첫 책에서 큰 그림을 펼쳐 보인다. 일본 사회를 분석하는, 사회학자들의 주장이 제기되고 반박되는 과정은 친절하면서도 ‘건강’하다. 일본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의 경우는 대상이 내셔널리즘이라기보다는 ‘반일’이다. 그리고 한·중을 분석하며 한 궤로 꿰기 위한 공통점에 주목하기 때문에 정련되지 않은 느낌이다. 학자에게도 일본 특유의 겸손함이 있는 것일까. 저자는 기존 학계의 주장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틀어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때는 “~하지 않을까” “~하다고 하면 무리일까” 등 조심스럽게 의견을 표현한다. 정밀하지는 않지만 설득력이 있다. 오히려 책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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