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민주화세력’은 실체를 가졌던가

등록 2007-06-22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보수파 집권을 막기 위한 연합? 여름호 김종엽 교수의 글에 대한 비판</font>

<font color="6b8e23"> 여름, 정계는 불구덩이처럼 뜨거울 것이다. 여름호는 ‘책 머리에’에서 ‘진보개혁세력의 재결집’을 주장했고 ‘논단과 현장’난에 김종엽 교수의 ‘87년 체제의 궤적과 진보 논쟁’이라는 글을 실었다. 김 교수는 ‘87년 체제’와 ‘자유주의 분파’의 성과와 한계를 논하면서 ‘정치적 다수화’ 전략을 고민하자고 말한다. 자유주의 세력을 포함한 민주화 세력의 연합으로 보수의 집권을 막자는 것이다. 이는 ‘비판적 지지냐 독자세력화냐’라는 케케묵은 질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정계가 뜨거워질수록 진보진영의 케케묵은 고민도 되풀이될 것이다. 우선 은 진보정당의 입장에서 쓴 비판을 싣는다. 김 교수, 혹은 진영의 반론을 기대한다. </font>

▣ 장석준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실장

연초에 한창 뜨거웠다가 지금은 좀 잠잠해진 이른바 ‘진보’ 논쟁에 의 지면이 포문을 열었다. 이 잡지의 올해 여름호는 진보 논쟁에 대한 김종엽 한신대 교수(사회학·이하 존칭 생략)의 논평인 ‘87년 체제의 궤적과 진보 논쟁’을 실었다. 김종엽은 한국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주곤 하는 주목할 만한 사회학자다. 필자 역시 그의 이전 글들에서 많은 깨우침과 영감을 얻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번 에 실린 글은 그런 아름다운 기억과는 좀 거리가 멀었다.

너무나 매끈해서 의심스러운

김종엽은 1987년 이후 20년간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확장 심화 프로젝트’와 ‘경제적 자유화 프로젝트’가 서로 경합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현 정권을 비롯한 ‘개혁적 자유주의 분파’가 이 둘을 중재하거나 병행했다고 한다. 그는 “현재 민주화와 자유화라는 두 프로젝트의 양립 가능성이 소진”돼가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이제까지 자유주의 분파가 이 둘을 함께 추진하면서 이뤄낸 성취를 무시해선 안 된다고 강변한다.

이런 입장이 어떠한 정치적 지향으로 이어지는지는 이 글의 결론부에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김종엽은 자유주의 분파의 약화가 민주화 세력의 일보 후퇴로 이어질 것이라 우려하면서 보수파(=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 다시금 ‘정치적 다수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그가 ‘자유주의 분파’라고 부르는 범여권을 포함한 어떤 연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생각이 백낙청의 ‘변혁적 중도주의’와 친화성을 가짐을 인정한다.

그의 글을 처음 읽고 받은 인상은 한마디로 참 깔끔한 논리 전개라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왠지 뒤끝이 석연치가 않았다. 왜 그럴까? 그 이유에 대해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이 글의 논리 구성이 너무 매끄럽다는 점이 오히려 우리가 이 글을 의심하게 만드는 주된 이유가 아닐까라고.

너무 매끄럽다는 것, 그것은 그만큼 심하게 깎아냈다는 뜻이다. 복잡한 현실의 울퉁불퉁한 표면을 깎고 다듬어 그 단면을 드러내는 것은 본래 사회과학자들이 하는 일이다. 한데 조작이 지나쳐 재료의 상당 부분을 떼어내는 수준에 이른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다. 필자는 김종엽의 글에 나오는 ‘민주화 세력’의 정의 속에서 바로 그 혐의를 보았다.

‘민주화 세력’ 틀짓기 속에 숨은 함정

김종엽은 ‘민주화 프로젝트’의 주도 세력이 ‘민중 부문’이라고 하면서 그 구성원으로 ‘신중간층, 민주화운동의 세례를 받은 청년층,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 집단’을 든다. 그리고 글의 다른 대목에서는 이들을 ‘민주화 세력’이라 칭한다. 그의 분류법에 따르면 ‘민주화 세력’은 ‘개혁적 자유주의 분파’와는 구분되지만 또 상당 부분 겹치기도 한다.

하지만 김종엽이 하나의 사회적 블록으로 상정하는 이 ‘민주화 세력’은 과연 그 정도의 실체를 가졌던가? 물론 대선 때마다 ‘민주화’나 ‘정권 교체’ 또는 ‘평화’라는 담론 아래 결집한 대중은 있었다. 하지만 모종의 일상적 정체성을 공유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공통 지반이 존재했는지는 의문이다.

이 문제는 김종엽이 ‘민주화 세력’의 일원으로 제시한 계층 중 가장 모호하게 처리된 저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 집단’을 통해 징후적으로 드러난다. 이른바 ‘386’이라 불리는 ‘신중간층 혹은 청년층’ 사이에 지난 20여 년간 크게 봐서 ‘민주화 세력’이라 통칭할 수 있을 상징적 연합이 존재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 집단’(아마도 그 대표적인 집단은 노동자와 몰락 위기의 구중간층 등일 텐데)의 경우에도 그랬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이것은 민주화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역할이 적었다거나 별로 없었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일종의 상징 연합인 ‘민주화 세력’은 한 번도 사회적 약자들을 유기적으로 통합할 만큼 강력했던 적이 없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식의 ‘세력’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한, 실제의 사회적 약자들, 즉 현실의 대중은 우리의 관심에서 항상 비켜날 수밖에 없다.

보수파 집권 막기용 ‘다수화’는 불가능

애초에 글의 시작부터가 달라야 했다. ‘민주화 프로젝트’와 ‘자유화 프로젝트’를 말하기 이전에 한국 사회의 여러 계급·계층이 지난 20여 년을 지내온 궤적을 이야기해야 했다. 대중을 실제 분열 혹은 규합시키는 이해관계들을 살펴야 했으며, 그것들을 좌표로 삼아 정치세력들을 자리매김해야 했다.

하지만 김종엽의 글에는 ‘보수파’나 ‘자유주의 세력’ 같은 정치 블록은 존재할지언정 그 무대 밑의 이야기는 없다. 이것은 그만의 잘못은 아니다. 진보 논쟁에서도 대체로 그러했고, 그간의 이 나라 사회과학계의 논의들 또한 그러했다.

이런 식의 사고는 지난 20년간 87년을 계승했다고 자처해온 세력들이 대중과 맺은 관계가 이해관계의 연대가 아니라 느슨한 상징 연합에 불과했음을 스스로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런 상징 연합으로는 결코 포괄될 수 없는 대중의 욕망과 분노, 불만과 희망을 배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종엽 자신도 총선시민연대나 탄핵반대운동 같은 “열정적 동원이 제도화된 보상으로 잘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낙차 큰 열망과 실망의 교대를 반복해서 경험해야 했다”고 지적한다. 왜 ‘열정적 동원’은 ‘제도화된 보상’으로 돌아올 수 없었는가? 보상은 이해관계의 표출과 조정, 선택과 결합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화’ 등 상징 자원에 의존해 정권을 연장해온 정치세력들로서는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었던 것이다.

사실 김종엽이 권하는 ‘정치적 다수화 전략’을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김종엽 등의 고민, 즉 ‘보수파 집권 막기’로는 그 ‘다수화’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다는 데 있다.

‘다수화’는 이제 이해관계의 대립 전선과 그것을 둘러싼 동맹으로만 가능하다. 그러자면 ‘중도’파 논자들이 푸념하듯이, 대중이 ‘민주화 세력’과 ‘자유주의 분파’ 사이의 함수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원망해선 안 된다. 탓해야 할 것은 대중이 아니라 오히려 그 낡은 수학 공식 쪽이다.

그리고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변혁적 중도주의’가 비판받는 것은 “과녁의 한가운데를 꿰뚫어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주장 때문은 결코 아니다. 단순히, 과녁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