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조울증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다니엘 스틸은 출판사에 따르면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혹자들에 따르면 “B급 연애소설의 대가”다. 평가가 어떻든 간에, 최근 번역된 (다니엘 스틸 지음, 이윤섭 옮김, 창해 펴냄)은 달콤한 로맨스 소설이 아니다. 열아홉 살에 자살한 조울증 환자 닉과 함께한 시간을 특유의 연약하고 감성적인 문체로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바로 이것. 닉은 다니엘 스틸의 아들이다.
스틸은 31번째 생일에 빌이라는 매력적인 남자를 만난다. 그를 만난 지 6주 만에 임신한 스틸은 결혼을 감행한다. 빌은 점점 성격적인 이상을 드러내더니 약물 중독에 빠지고 만다. 빌과의 만남은 짧게 끝났지만 닉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닉은 매우 영리하고 잘생긴 아이였다. 다만, 잠을 자지 못하고 충동을 제어하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스틸은 때때로 불안감에 사로잡혔지만, 그 불안의 정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깨닫지 못했다. 닉은 학교에 들어가서도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괴팍한 행동을 일삼았다. 결국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그를 받아줄 다른 학교와 심리상담가를 찾아헤매는 나날들이 시작됐다.
스틸이 맞닥뜨린 첫 번째 재앙은 ‘무지’였다. 그때까지 스틸은 조울증이 얼마나 심각한 질환인지 알지 못했다. 그를 상담한 정신과 의사나 교사들도 닉을 그저 ‘버릇없는 아이’로 치부할 뿐이었다. 그러나 점점 스틸은 닉이 학교의 규칙 준수나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병 때문에 ‘못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스틸은 닉의 병을 정확히 진단해줄 의사를 찾아 미 전역을 헤맨다. 결국 닉이 ‘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스틸은 오히려 안도하게 된다. 닉의 내부를 갉아먹고 있는 악마의 정체를 알았으니 이제 싸울 수 있는 것이다.
조울증 치료제인 리툼염을 투약하게 된 닉은 기적적으로 안정을 찾게 되고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발휘해 록 밴드를 결성한다. 그러나 닉이 첫 번째 자살을 기도했을 때 스틸은 조울증 환자 중 60%가 자살을 기도한다는 무서운 사실을 깨닫는다. 헌신적인 어머니와 함께 자신의 병과 투쟁하던 닉은 결국 열아홉에 생을 마감한다.
스틸은 책이 나오고 난 뒤 십대 조울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청소년 조울증의 진단과 처방에 주저하지 않는 전문가들이 늘었다고 자부한다. 이것이 스틸과 닉의 승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무지는 정신질환이 환자의 생명을 거둬가게 만드는 무서운 무기다. 스틸은 작가답게 싸웠다. 그가 최선의 어머니인지, 최고의 작가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죽은 자식을 위한 최선의, 최고의 작별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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