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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국민 여러분, 사진 찍지 마세요

등록 2005-10-27 00:00 수정 2020-05-02 04:24

한국의 무분별한 사진 문화를 비판하는 <대한민국 사진공화국>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대한민국 사진공화국>은 대중의 ‘사진적 행위’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삐딱한 소리를 뱉어낸다. 이 책은 묘하게도, ‘사진을 잘 찍는 법’ 같은 정보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닫아버리고 한국인이 사진을 찍고 감상하고 향유하는 방식에 대해 잔소리를 해댄다. 자고 일어나면 디지털 카메라부터 챙기고, 둘만 모이면 플래시를 터뜨리는 나라에 ‘사진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이 무슨 소릴까?

이 책에는 대한민국의 사진 문화에 대한 새롭고 참신한 비판은 없다. 매우 원론적이고 상식적인 비판이라서 때로는 보수적이라 보일 정도다. 이 책이 빛나는 이유는 바로 이 ‘뻔한 비판’에 있다. 사진산업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하는 동안 사진의 원칙에 대한 주장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은이가 본 한국의 사진 문화는 무엇이 문제일까? 문제는 이 한마디로 집약될 수 있다. “봐도 되는 것과 보면 안 되는 것, 보여줘도 되는 것과 보여줘서도, 보여줄 필요도 없는 것 사이의 간격”이 사라져버린 상황이다.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황색저널리즘에 있다. 스포츠신문과 연예뉴스의 영상은 시간이 갈수록 ‘자극’을 연료로 달리게 된다. 인터넷이란 거대한 매체는 그 어마어마한 속도와 정보의 양을 동원해 ‘시각적 낭비’를 일으킨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엽기 열풍’과 ‘고 김선일씨 살해 동영상 사건’이다.

이런 황색 저널리즘이 사진에 끼친 가장 큰 해악은 사진에 대한 대중의 분별력을 없앴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경험한 한 에피소드는 사진을 찍는 우리의 자세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지은이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아마추어급의 사진가가 무언가를 굉장히 열심히 찍고 있는 것을 본다. 카메라 렌즈가 향해 있는 곳으로 눈을 돌리자, 15살쯤 되었을 지체 장애 소녀가 있었다. 지은이는 사진 찍는 것을 잠깐 멈추게 하고 물었다. “저 아이를 왜 찍으세요?” 혹시 장애인을 테마로 사진 작업을 하는 건 아닌지 궁금해서 묻는 거라고 했다. 그 남자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지나가다가… 그냥 찍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사진에 대한 대중의 무분별함, 다시 말해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가 ‘사진적 행위’의 기쁨을 빼앗는다. 그저 재미있는 소재라고만 본 아이의 모습이 아이에게는 평생의 삶이다. 지은이는 구체적으로 우리의 병든 사진 문화에 대한 처방을 찾아나간다. 우리의 눈을 청소하고, 초상권과 저작권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 또 학교에서부터 ‘분별력’을 기를 수 있는 시각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지은이는 심지어 우리 사회에서 무한정 남용되고 있는 ‘표현의 자유’ 개념도 좁게 봐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지은이는 ‘좋은 사진을 찍는 법’에 대해 말한다. 엉뚱하게도 그 답은 “할 수만 있다면 사진 찍지 말라”이다. 어디를 가든 “무조건 많이 찍고 보자”는 태도가 우리의 시각적 낭비를 부추기는 만큼, 사진 컷 수를 정해놓고 정말 필요한 사진을 자신의 경험과 감각을 활용해서 찍으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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