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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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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배를 조심해

등록 2005-08-04 15:00 수정 2020-05-02 19:24

▣ 김학민 <맛에 끌리고 사람에 취하다> 지은이 hakmin8@hanmail.net

건배를 영어로는 ‘토스트’(toast)라고 한다. 또 토스트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위하여!’처럼 음주자들이 술을 마시기 전에 잔을 높이 들고 외치는 건배사이기도 하다. 왜 구운 빵을 뜻하는 토스트가 건배를 의미하게 되었을까?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옛날 유럽에서는 포도주 맛을 좋게 하기 위해 포도주 잔에 갓 구운 토스트 한 조각을 넣었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여 그것이 건배 또는 건배사가 되었다고 한다.
음주 의식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것이 건배다. 음주자들은 건배에서 서로의 우정과 그들의 좋은 관계를 확인하려 한다. 그리고 이러한 확인을 통해 더 이상 위협적인 상황은 종료된 것으로 간주한다. 여기에서 술은 건배에 의해서 결속되는 사람들의 공동체, 우정, 형제애를 보장하는 상징이 되고, 그 확인과 보장의 매개체로서 술이 신성시되는 것이다. 곧 고대 사회의 제의에서 술잔을 높이 들고 신과 소통하는 제사장의 신성한 행위의 속화된 형태가 이후에 건배로 남게 된 것이다.
그러나 건배로 상징되는 공동체적 음주 의식은 다른 기묘한 양면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건배는 음주자들의 형제애적 결속을 다지려는 목적을 가지지만, 동시에 이 관계에는 인간들 사이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통제, 의무 그리고 경쟁의 특성도 개입된다. 곧 이 결속의 의도와 주된 규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전혀 다른 돌발적인 상황을 만들기도 하는 바, 건배하며 잔을 권했는데 거부하게 되면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지면서 의도했던 형제애의 결속은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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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건배의 목적과 의도를 정확히 관철하기 위해서는 음주자들이 공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건강을 위한 기원, 술을 시원하게 마시라는 촉구, 특정한 집단이나 일이 잘되라는 염원 등 음주자들의 최대공약수적 함의가 건배사로 무난한 것이다. 영·미 계통의 ‘Good health!’(건강을 위하여), ‘Cheer up!’(기분을 내라), 프랑스인들의 ‘아보트르 상테!’(A Votre Sante·당신의 건강을 위해), 이탈리아인들의 ‘알라 살루테!’(Alla Salute), 스페인들의 ‘살루드 아모르 이페세스타스!’(Salud Amor Ypesestas·당신의 건강과 사랑과 돈을 위해서), 북유럽인들의 ‘스콜(건강)!’이 건강을 위한 건배사고, 잔을 비워 시원하게 마시라는 건배사로는 한국, 중국, 일본의 ‘건배!’(乾杯·중국말로는 간베이), 미국인들의 ‘보텀스 업!’(Bottoms up)이 있다. 또 제 식구 제 집단만 잘되기를 바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위하여!’류 건배사도 유별나다.

건배한 뒤 술잔을 가볍게 입술에 대고 한 모금 마시는 이유는 혹시 술에 독이 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불신에서 비롯된 습속으로 보기도 한다. 일찍이 서양 사회는 유목과 교역이 빈번해 항상 낯선 사람과 공존해야 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마시는 술과 똑같이 독이 없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건배한 뒤 동시에 술을 마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술잔에 독이 들어 있지 않을까만 의심하다가는 또 다른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7월21일, 어느 자리에서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은 건배하라고 따라준 맥주를 느닷없이 주빈에게 끼얹고는 잔을 던져 다른 참석자를 부상케 하였으니, 건배 때는 술잔뿐 아니라 상대방의 손놀림도 유심히 감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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