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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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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질’로 탄생한 미국

등록 2005-07-29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학민/ <맛에 끌리고 사람에 취하다> 지은이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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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이 남자와 여자로 구성돼 있는 것처럼, 다른 한편으로 세상은 술 마시는 사람과 술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천지가 술판이요, 모든 사람이 술꾼으로 보이겠지만, 통계에 의하면 인류의 30% 정도는 아예 술을 못 마시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대개 종교적 신념에서거나 알레르기 등 신체의 질환, 또는 체내에서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의 활성도가 유전적으로 매우 낮아 술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이유로 인류의 일부가 술을 멀리하게 된 것은 술이 인류사에 등장한 지 한참 뒤에 벌어진 종교현상이나 의학상의 연구와 발견 때문이지만, 아예 원천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술이란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한 종족이 있었던 것인데, 에스키모와 아메리카 인디언,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 그들이다. 최초의 술의 탄생은 움푹한 바위 틈에 떨어진 과일의 자연발효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과일이나 식물의 씨앗들이 자연발효되기 위해서는 적당한 온도와 습기가 수반돼야 하는데, 에스키모들이 살던 영하 30~40도 얼음 벌판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술을 몰랐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의 거주지도 북극 얼음 벌판처럼 춥지는 않지만, 1년 내내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건조한 기후 지역이었던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는 “성질이 착하고, 말을 무척 빨리 알아듣는 것으로 보아 머리가 아주 좋은 것 같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만난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착각하는 바람에 ‘인디언’이라고 부른 이 ‘야만인’들은 착하고 머리가 좋을 뿐만 아니라 술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콜럼버스가 ‘발견’하고 난 뒤 신기루를 찾아 물밀듯이 아메리카로 건너간 유럽 사람들에게 원주민 ‘인디언들’은 그들의 땅 욕심을 채우는 데 거치적거리는 귀찮은 존재일 따름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부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원주민들의 터전을 무참하게 유린하고 수백만명의 목숨을 살육했다. 디 브라운의 <나를 운디니드에 묻어다오>(창비)에는 1890년 12월27일, 미 기병대가 어린이와 여자 230명을 포함한 350명의 원주민 포로 중 300명을 살해한 인종 청소의 참극이 소개돼 있다.

1960년대까지 유행했던 서부영화의 여러 장면들에서 보듯, 원주민들은 자기가 살던 터전을 지키려고, 또 빼앗긴 삶의 터전을 되찾으려고 백인들에 맞서 용감히 싸웠지만, 잘 훈련된 기병대의 화포 앞에 그들의 화살은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그들은 결국 사막이나 황야의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몰려 기구하게 목숨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즈음부터 백인들의 전혀 새로운 공격에 직면하게 된다. 곧 술 공격이다. 수천년 이래 술을 모르고 살았던, 그리하여 알코올 분해 능력이 유전적으로 아주 낮았던 인디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쏟아부어진 위스키는, 그 중독으로 인해 그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또 평균수명을 크게 떨어뜨렸다. 이로써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때 500만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던 원주민의 수가 지금은 100만명으로 줄어들었으니, 1776년 7월4일 ‘영광된 미국’이 탄생하는 데는 ‘총질’과 더불어 ‘술질’ 또한 큰 역할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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