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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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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의 ‘반야탕’

등록 2005-09-30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학민 <맛에 끌리고 사람에 취한다> 지은이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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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에 “현종 원년(1010)에 스님들과 비구니들이 술을 빚는 것을 금지하였다”는 구절이 나온다. 또 “사찰 안팎에서 스님과 신도들이 술을 주조하고, (불교에서 금하는) 파와 마늘을 팔 뿐만 아니라, 병기를 가지고 포악한 짓을 하므로 이를 금지시켜 달라”는 상소가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고려시대 사찰은 연등회나 팔관회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불교행사를 기화로 일종의 유통업을 겸한 주점의 역할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곧 고려 왕실과 밀착되어 있던 불교는 전답과 노비를 가지고 있으면서 면세, 면역의 특혜까지 입었을 뿐 아니라, 방대한 사찰 소유 전답에서 나오는 곡물로 일종의 사채놀이까지 했다. 여기에서 자연 곡물을 2차 가공한 술과 국수의 생산과 유통, 차의 재배와 가공, 밀, 파, 소금, 기름, 꿀의 판매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사원경제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술은 사찰에서 거의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음주를 금하는 불교의 보살본계와 상관없이 산중의 열악한 식사와 추위로 인한 냉한병을 이기기 위해 소량으로 은밀하게 시작했던 술이 나중에는 사원경제의 한 축을 지탱하는 양조업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사찰의 양조업은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가 핍박받았던 조선시대에 들어와 급격하게 쇠퇴했다. 그리하여 술은 일부 사찰에서 스님들의 원기를 유지·회복해주는 ‘비장의 음식’(불교에서는 반야탕이라 부른다)으로 다시 자리잡으면서 그 명맥을 전해왔다.

산중에서 가장 흔한 것은 소나무였다. 소나무는 속껍질에서 잎, 솔방울, 순, 꽃가루, 뿌리에 이르기까지 식품적 가치가 높았으며, 그 화학적 성분으로 인해 약재로도 널리 이용되었다. 속껍질은 생식하거나 말려 보관했다가 물에 담가 떫은 맛을 없앤 뒤 식용하거나 가루로 만들어 송기떡을 빚었다. 꽃가루는 송황 또는 송화 등으로 불리는데 밀과의 재료가 됐고, 기를 보호해주는 약성을 지니고 있다. 솔잎은 송모라고도 하여 죽을 만들어 먹기도 하며, 어린 솔잎 한말을 잘게 썰어 오지항아리 속에 넣고 여기에 뜨거운 물 한말을 넣어 보통 김치와 같이 담그는데, 그것이 점차로 서늘해지면 무, 미나리 등을 썰어 넣거나 파, 부추, 된장, 소금 등으로 맛을 돋운다. 시일이 지나면 한 공기씩 먹고 수시로 그 물을 마시면 좋다.

소나무는 술을 만드는 데도 쓰인다. 어린 순으로 담그는 송순주, 솔방울술인 송자주, 소나무 옹이(송절)를 삶은 즙으로 담그는 송절주, 솔잎술인 송엽주, 화분을 이용한 송화주 등 솔향을 깃들게 빚는 술들이 여럿 있다. 전북 완주군 모악산 기슭의 수왕사에서는 천년 신비의 사찰주 ‘송화백일주’가 나온다. 우리나라 전통식품 명인 1호인 벽암 스님이 1980년대에 이 전통주를 재현해냈는데, 1992년부터 송화양조라는 조그마한 주조장을 차려 대중화에 노력하고 있다(063-221-7047). 옛 조리서인 <규곤시의방>이나 <임원경제지>대로 송화 한말을 달인 물에 누룩 석되와 찹쌀죽 열말꼴로 섞어 석달 열흘(100일)을 발효시킨다. 먼지와 같은 송화가 한말이나 들어가는 술이니 얼마나 귀한 정성이 들어갔겠는가? 흥청망청 마시는 술이 아니라 수행을 위해 몸을 보하고 원기를 돋게 하는 ‘반야탕’이라 불렀던 옛 스님들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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