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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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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과 알콜중독

등록 2005-07-08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학민/ <맛에 끌리고 사람에 취하다> 지은이 hakmin8@hanmail.net

피에르 푸케의 <술의 역사>에 의하면, ‘알코올중독’(alcoholism)이란 용어는 1849년 스웨덴의 의사 마뉴스 후스가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후스는 당시 스톡홀름의 세라핀 병원에서 간·심장·신경 질환을 앓고 있던 환자들을 진찰하면서, 그들이 앓고 있는 여러 질병들이 스웨덴의 감자로 만든 브랜디 ‘이콰비트’를 지나치게 마시는 것과 관계가 있음을 확인하게 됐다.
스웨덴에서는 15세기 중반 이후부터 증류기가 본격적으로 이용됐는데, 17세기에 이르러서는 큰 농장주들이 각기 단풍나무즙이나 감자를 발효시켜 나온 액을 2, 3차 증류해 높은 도수의 브랜디를 생산해냈다. 그리하여 19세기 초쯤 스웨덴은 유럽에서 ‘주정뱅이’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는데, 이 주정뱅이들이 나중에 후스에 의해 ‘알코올중독자’로 규정된 것이다.
그러나 술을 지나치게 마심으로써 일어나는 각각의 임상적 증상들을 하나로 통합해 후스가 붙인 새로운 병명 알코올중독은, 의사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술꾼들의 무관심과 묵계로 이후에도 상당 기간 ‘약간의 낭만적인 술주정’으로 치부됐다. 이 새로운 병이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파괴하는 치명적인 증상임을 인식하고 본격적으로 치료법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에 들어와서였으니, 이 100년 동안에 ‘낭만’ 때문에 숱한 술꾼들이 스러져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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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9세기 초를 경계로 ‘술주정’과 ‘알코올중독’이 분화됐을까? 19세기 이전에는 알코올중독이 없었던 것일까? 또 역으로 19세기 초부터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됐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19세기 초 유럽과 미 대륙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은 인간의 생활환경 전반에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그 중에서도 술은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70년이 지나지 않아 성인 한명당 연간 소비량이 15ℓ에서 35ℓ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물론 이즈음에 술의 생산, 저장, 유통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도 술 소비 증대에 한몫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산업혁명의 그늘에서 술로 고통을 삭이려던 노동자들의 ‘가난과 슬픔’ 때문이었다.

산업사회로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일어난 경제적 변화는 노동의 기계화였다. 도시에 세워진 공장들이 많은 노동력들을 흡수했고, 도시들은 이내 폭발적으로 팽창해 주변 농촌에까지 공장들이 뻗어나갔다. 이에 따라 점점 더 많은 빈민과 부녀자, 어린이들이 일자리를 구하러 도시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하여 새로운 계급, 프롤레타리아가 생겨난 것이다.

노동자들의 삶은 열악했다. 그리고 이들은 처참한 삶을 잊으려고 더욱더 술에 젖어들었다. 이러한 상황은 엥겔스의 <영국 노동계급의 현황>이란 책에 잘 묘사돼 있으며, 그 밖에 에밀 졸라, 플로베르, 아나톨 프랑스, 로맹 롤랑, 다윈, 버나드 쇼, 잭 런던 등도 당시 노동 사회의 비참함을 글로 표현하고 있다.

곧 술 생산의 급증, 판매 및 유통망의 발전 그리고 사회·경제·인구 차원에서 일어난 극심한 사회환경의 변화가 수천년 동안 이어오던 음주문화를 몇십년 만에 뒤흔들어 알코올중독자를 양산케 하였으니, 자유가 피를 먹고 자라는 것처럼 문명은 술을 먹고 자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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