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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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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한 皮兒

등록 2005-08-19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학민 <맛에 끌리고 사람에 취하다> 지은이 hakmin8@hanmail.net

맥주는 기원전 4천년경 바빌로니아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최초의 맥주는 곡식(보리)의 전분이 맥아당으로 변할 정도로 열을 가해 숙성시켜서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얻은 맥아를 빻은 다음 다시 빵조각 사이에 넣고 짜냈는데, 그것은 운반과 보관을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빵조각을 부수어 물을 섞고 여기에 적당한 효모를 첨가하면 맥주가 되었던 것이다. 맥주는 기원전 3천년경부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대중적인 술이었다. 당시 이집트인들은 ‘빵과 맥주’를 곧 식사라는 단어로 간주했는데, 이때에는 보리 찌꺼기를 걸러내는 여과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바로 양조된 맥주가 담긴 둥근 통에 직접 입을 대고 마시거나 빨대를 꽂아 빨아 마시기도 했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에서 유행한 ‘고대 맥주’는 아시리아, 히브리를 거쳐 곧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맥주는 날씨 때문에 포도 재배가 불가능해 와인 문화권에서 멀어져 있던 독일, 북구, 영국에서 발달하게 되었는데, 맥주를 뜻하는 영어 Beer, 독일어 Bier, 프랑스어 Bire 모두 게르만족의 언어에서 파생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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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는 중세까지 수도원에서 주로 주조했다. 당시 수도원들은 완벽한 양조시설을 갖추고 대량으로 맥주를 생산해 큰 이익을 올렸다. 이들은 맥주 원료인 보리의 품종 개발, 물의 정제, 그리고 양조기술의 발전에 끊임없이 노력해 오늘날의 맥주가 출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중세까지만 해도 맥주의 표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농장마다 양조법이 각각이었고, 원료의 투입량 또한 일정치 않아 맛과 알코올 도수, 향이 천차만별이어서 맥주는 와인에 비해 특색 없는 저급의 술로 취급받았다. 이러한 맥주가 획기적으로 변화하게 된 것은 씁쓰레한 맛과 구수한 향을 내게 하는 호프를 사용하면서부터였다. 호프가 첨가되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맥주는 1516년 빌헬름 4세의 “맥주에는 보리, 호프, 효모, 물 이외에 그 어떤 것도 넣어서는 안 된다”는 ‘맥주순수령’(Reinheitsgebot)이 선포되면서 오늘날의 표준화된 맥주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맥주가 처음 들어온 것은 고종 13년(1874) 개항 직후일 것으로 여겨진다. 한일수호통상조약이 발효된 뒤 조인된 한일통상장정 해관세목에 따르면, 관세율 10%로 포도주와 ‘맥주’를 통관시킨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맥주’는 유럽의 맥주 문화를 받아들여 일본에서 제조한 일본 맥주일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것은 고종 20년(1883) 조선이 미국, 영국, 독일 등 구미제국과 관세협정을 맺으면서, 그들 나라의 맥주를 ‘대맥주’(大麥酒) 또는 ‘피아’(皮兒)라고 다르게 부르는 것이 나오기 때문이다. ‘대맥주’는 맥주의 원료가 대맥(大麥·보리)인 데서 나온 것 같고, ‘피아’는 영어의 Beer 또는 독일어 Bier의 발음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여겨진다.

맥주는 막걸리와 같이 느낌의 술이다. 청주, 위스키, 브랜디 등은 작은 잔으로 혀와 코를 통해 향과 맛을 즐기는 술들이지만, 맥주, 막걸리는 큰 잔으로 단숨에 목젖을 넘기면서 시원한 느낌을 즐기는 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미에서는 맥주맛을 이야기할 때 ‘mouth feel이 어떠냐’고 묻는 것이고, 맛이 부드럽고 좋으면 목으로 잘 넘어간다는 뜻으로 ‘round하다’고 답하는 것이다. 갑자기 mouth feel이 round한 皮兒 한잔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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