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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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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과 덴뿌라

등록 2005-10-14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학민/ 학민사 대표 · 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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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은 <전원일기>와 <수사반장>을 통해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확립시킨 연기자다. <전원일기>의 김 회장은 4대를 거느리는 가장으로, 소박하지만 때로는 엄격하기도 해서 가부장적 권위로 가족을 이끈다. 이 가정에서는 ‘아버지의 판단’이 가족의 평화와 질서를 이어가는 최고의 규범이자 제도다. 또 <수사반장>의 박 반장 역시 미궁을 헤매는 범죄 사건을 직관력과 판단력 그리고 단호함으로 해결해 정의를 바로 세우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 두 캐릭터는, 부정과 부패, 특권 등 구조적인 부조리가 판치던 1970, 80년대 군사정권하의 정치 현실이나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진 농촌 경제, 그리고 개인주의의 팽배로 전통적인 가족이 급격히 해체되는 사회 현상과는 크게 유리된 묘사였다. 또 이것은 80년대 ‘질풍노도의 시대’에 뒤이은 90년대 신세대들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서, 곧 최불암의 캐릭터와 사회 현실 사이의 괴리로 인한 허무감이 희화화돼 ‘최불암 시리즈’가 90년대부터 유행했던 것이다.

어느 날 최불암이 미술시험을 보게 됐는데, 조각품 <생각하는 사람>을 만든 작가의 이름을 쓰라는 문제가 있었다. 최불암은 아무리 해도 그 작가를 알 수 없었다. 답을 모르기는 최불암의 바로 옆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그 친구가 다른 옆 친구의 시험지를 살짝 커닝해보니 ‘로댕’이 답이었다. 그러나 급히 보느라 그만 흘려쓴 ‘ㄹ’을 ‘ㅇ’으로 읽어버렸다. 그래서 그 친구는 <생각하는 사람>의 작가를 ‘오댕’이라 적었다. 최불암 또한 옆 친구의 시험지를 곁눈질해 보니 답이 ‘오댕’이라고 쓰여 있질 않는가? 문득 자기도 ‘오댕’이라고 똑같이 쓰면 친구 답안지를 베껴쓴 것을 선생님이 알아차릴 것 같았다. 그래서 최불암은 <생각하는 사람>의 작가를 ‘덴뿌라’라고 적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지난 6월 한국사학진흥재단의 이사장에 임용됐다. 그러자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은 아무 절차도 없이 청와대에서 낙하산으로 내려보냈다고 비난했다. 사립대학의 교수와 대학원장을 지낸 나를 사립학교에 관한 경력으로는 사립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한 것밖에 없다고 빈정댔다. 나는 출판사 ‘학민사’를 경영해왔다. 70, 80년대의 어두운 정치현실에 고뇌하며 살았던 사람이라면 ‘사회과학 출판사 학민사 대표 김학민’ 이름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이사장 내정 사실을 처음 보도한 <동아일보>는 비난을 넘어 나를 ‘도서출판 학림 대표’로 틀리게 소개했다. 그리고 뒤따라 조·중도 비슷한 기사 내용에다 ‘도서출판 학림 대표’까지 그대로 갖다붙였다. 이후의 다른 신문들에서는 ‘학림’이 ‘학님’으로도 바뀌고, 친절하게 구개음화돼 ‘학임’으로도 되었으니 ‘로댕’이 ‘덴뿌라’가 된 사연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한국사학진흥재단의 이사장직을 열심히 수행해왔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매 주일의 술 칼럼은 제법 심리적 압박을 가해왔다. 그래서 잠시 재충전의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칼럼을 끝내기 전에 아끼고 숨겨두었던 술집 하나를 소개한다. 수도권 지하철 2호선 사당역 과천 방향으로 나가자마자 우회전해 50m 들어가 골목 안으로 좌회전하면 ‘부산오뎅’(02-3474-9937)이라는 정말로 기가 막힌, 로댕집도 아니고 덴뿌라집도 아닌 어묵집이 하나 있다. 서늘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들어가 뜨끈한 어묵국에 정종 한잔이면 온몸이 확 풀어진다.

*김학민의 술이야기 연재를 이번호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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